최첨단 마라도의 파수꾼 박영흡 경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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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우리나라 최남단 마라도.
25가구 67명이 사는 이 조그만 낙도(落島)에도 관광객들의발길은 끊임없이 이어진다.하루 세차례 남제주군대정읍 모슬포항에서 출발하는 유람선을 타고 마라도를 찾는 관광객만도 매일 1천명을 헤아린다.배가 마라도에 닿으면 관광객들은 선착장에서부터 줄곧 뒤를 따르며 마라도 곳곳을 안내하는 푸른 제복를 입은 초로의 신사를 어김없이 만나게 된다.
마라리이장.마라분교장.마라등대소장과 함께 이섬의「터줏대감 4인방」중 한사람이자 유일한 치안총수인 이 초로의 신사는 서귀포경찰서 대정파출소 마라도경찰관출장소 소장 박영흡(朴榮洽.54)경사. 67년 27세로 경찰에 투신,수많은 우여곡절과 시련을 거치며 묵묵히「민중의 지팡이」길을 걸었던 朴경사는 모진 세파 속에서도 오직 이 한길만을 고집해왔다.
정년을 2년 앞둔 경찰생활의 마감을 위해 朴경사가 마라도를 지원한 것은 92년1월.
『그 먼 곳에 굳이 자원하는 이유가 뭐냐』는 동료 경찰관들과아내.아이들의 불평을 뒤로하고 그는 한반도 최남단의 파수꾼을 자청했다.
『최근에 벌어지는 강력사건에 우리 경찰이 자꾸 속수무책이 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모쪼록 이곳 마라도만이라도 사건 제로지대로 만들어 내 경찰생활을 멋있게 마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작정입니다.』 그러나 朴경사가 부임해온 마라도는 너무도 초라했다.
『간이진료소조차 없어 주민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이때문에주민들이 고통을 겪을 때면 의사도 아닌 저로선 어찌할 수도 없고….정말 그때는 죄송스러운 마음 뿐입니다.』 더구나 이곳을 찾은 관광객중 위급환자라도 생기면 朴경사로선 벼랑에 선 기분이다. 태풍 최전선에 놓여있는 이 섬에 비바람이라도 몰아쳐 배조차 오지 않으면 朴경사가 할 수 있는 것은 긴급 구조헬리콥터 요청뿐. 朴경사가 관광길안내를 맡고 있는 것은 본인이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일단 섬안에 발을 디딘 모든 사람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글=高昌範기자 사진=梁聖哲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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