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비즈니스 메카로] '깨끗한 핀란드' 체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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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감시 국제민간단체인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하는 국가부패지수에서 핀란드는 지난해 10점 만점에 9.7점을 얻어 4년 연속 1위에 올랐다. 핀란드가 이처럼 세계에서 부패가 가장 적은 나라로 명성을 이어가는 비결은 뭘까. 지난해 봄 핀란드 헬싱키 무역관장으로 부임한 필자는 이곳에 살면서 핀란드 공무원들의 생활상을 유심히 관찰했다.

핀란드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는 정직성이다. 지난해 해운청 공직자가 쇄빙선(얼음을 깨뜨려 뱃길을 내는 배) 임대계약과 관련해 접대받은 사건이 터진 것을 보았다.'이곳 공무원들도 어쩔 수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비리가 1980년대 초반 헬싱키의 지하철 공사 때 납품을 둘러싼 뇌물 사건 이후 한참 만에 터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지난해 6월에는 첫 여성 총리로 관심을 모았던 야텐마키 중도당 당수가 사임하는 일이 발생했다. 여성 대통령에 여성 총리라는 신기록으로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그였지만 취임 두달 만에 퇴진하고 만 것이다. 국회 증언이 거짓으로 밝혀진 지 불과 몇 시간 뒤였다. 지난해 선거 때 비밀 외교문서를 폭로해 집권당을 공격했는데, 그 문서를 구한 경위를 밝히는 과정에서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깨끗한 핀란드의 또 다른 기초는 투명한 행정제도에 있다. 공공행정의 모든 것이 일반에 공개된다. 공공행정과 관련한 각종 다이어리와 기록이 빠짐없이 공개돼 시민과 언론은 물론이고 다른 공무원들의 감시와 평가를 받는다. 일반인들도 정부 부처 문서실에 보관돼 있는 각종 문서를 무료로 열람하고 복사할 수 있다. 국가 이익이나 개인 프라이버시, 기업 비밀 등과 관련된 일부 사항을 제외하고는 비밀문서로 분류되지도 않는다. 이처럼 공공 서비스가 유리알처럼 공개되니까 공무원에게 '잘 봐달라'며 뇌물을 줄 필요성이 저절로 없어진 것이다.

정 철 KOTRA 헬싱키 무역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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