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내 살던 옛집 지붕의 갸륵함에 대해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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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장석남(1965~) '내 살던 옛집 지붕의 갸륵함에 대해서' 전문

나는 그 집 지붕의 갸륵함에 대해서
노래할 수 있을까
불임으로 엉킨 햇빛의 무게를
견디는, 때로는 고요 속에 눈과 코를 만들어
아래로 내려보내서는 서러운 허공중들도
감싸안는
그 집 지붕의 갸륵함에 대해서

클레멘타인을 부르던 시간들을 아코디언처럼
고스란히 들이마셨다가
계절이 지칠 때
꽃 피는 육신으로 다시 허밍하는
그 집 지붕의 단란한 처마들

나는 걸음에 젖어서
그 갸륵함에 대해서



겨울날 낙안읍성에 가면 세상에서 가장 아늑하고 평화로운 풍경을 볼 수 있다. 새 이엉을 올린 샛노란 초가지붕들이 서로 이마를 맞대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을 보면 아, 하는 탄성이 절로 스며나온다. 지붕들은 서로의 어깨를 주물러주기도 하고 서로의 거친 발바닥을 두드려 주기도 하고 어젯밤 못다한 옛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지붕들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이불로 인간의 모든 삶과 꿈을 덮어준다. 그 갸륵함의 깊이라니….

곽재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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