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난치병 아이 보듬는 '총각 아빠' 3총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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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2002년 겨울. '총각 아빠 3총사'는 경북 울진 두메 산골로 내려갔다. 서울에서 출발해 집을 찾아들어가는 데 10시간이 걸렸다. 영화 '집으로'의 무대와 비슷한 첩첩산중에서 혈액암을 앓고 있는 네살짜리 다은이를 만났다.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다은이와 하루를 함께 보낸 그들은 다은이를 치료비 지원대상자로 결정했다.

서울로 돌아온 이틀 뒤 다은이가 숨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조의금 5백만원을 들고 다시 달려갔다. 그러나 할머니는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 다른 어린이를 도와주라"며 사양했다. 세 사람은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흐느껴 울었다.

"밤새 울었습니다. 다은이의 예쁜 얼굴이 자꾸 떠올랐어요. 우리가 좀더 일찍 찾았더라면, 그래서 치료비를 지원해 줬더라면 다은이는 살 수도 있었을 텐데요."

패션내의 전문업체 ㈜좋은사람들에는 89명의 아이들을 거느린 세명의 '총각 아빠'가 있다. 난치병 어린이 돕기 캠페인 '아가야, 그동안 많이 아팠지 팀(이하 아가야 팀)'의 핵심 멤버 강철석(姜喆錫.33). 임정환(林正煥.32)대리와 이숭도(李崇道.27)씨다. 이들은 주말에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가정 형편이 어려워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난치병 어린이들을 찾아다닌다.

2001년 시작된 이 회사의 '아가야' 프로그램은 난치병 어린이가 치료받을 수 있도록 돕는 활동이다. 회사 측은 매년 순이익의 5%인 2억원가량을 지원한다. 그동안 도와준 어린이는 모두 89명. 복지재단의 추천을 받은 어린이의 상태를 살펴보고, 치료 후 잘 지내는지를 점검하는 것이 '총각 아빠'들의 역할이다. 입사 5년차인 姜대리는 '아가야 팀'의 '왕아빠'다. "진짜 총각이 맞느냐"는 질문을 받을 정도로 어린이들과 잘 논다.

올해 그들은 어린이 27명의 새 아빠가 된다.

"제주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인 민주는 체육시간만 되면 벤치에 앉아 있었어요. 심장병 때문에 뛸 수가 없었지요. 무사히 수술을 마쳐 지금은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어요. 한달에 한번씩 민주가 편지를 해요. 감사하다고요."(林대리)

'총각 아빠'들의 기억에 가장 선명하게 남아있는 어린이는 2002년 초 우즈베키스탄 태생으로 국내에서 수술을 받고 돌아간 글로라(4)다. 선천적인 척추 기형이었다.

"마음을 열고 대하니 언어의 제약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더군요. 힘든 수술과 치료를 잘 견딘 글로라는 웃으며 본국으로 돌아갔어요. 가끔 종교재단을 통해 소식을 듣고 있지만 국내 어린이들처럼 주말에 찾아가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쉬워요."(李씨)

결혼해 진짜 아빠가 되더라도 계속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는 것이 李씨의 바람이다.

"올해도 투병 중인 아이들을 찾아 전국 곳곳을 누벼야겠지요. 피곤한 건 사실이지만 저희의 노력으로 건강을 되찾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지친 다리에 다시 힘이 솟는답니다."

김동섭 기자<donkim@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 바로잡습니다

2월 13일자 26면 '총각 아빠 3총사' 기사의 사진설명 중 '동방사회복지관'은 '동방사회복지회'이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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