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386 소주 마시다 양주·호텔로 불법시위 친구 석방 요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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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처음엔 안면을 익히느라 저녁식사를 자주 했다. 반주는 으레 소주였다. 양주 이야기를 꺼내면 몰매 맞을 분위기였다. 몇 달이 안 가 분위기가 바뀌었다. 양주도 등장하고 한 끼에 10만원 하는 고급 호텔이나 레스토랑을 거리낌 없이 드나들었다."

허준영(55.사진) 전 경찰청장은 "현 정권의 실세인 청와대 386 참모진이 정권 초 몇 달도 안 돼 달라졌다"고 주장했다. 21일 발매된 월간중앙 12월호와의 인터뷰에서다.

허 전 청장은 2003~2004년 대통령 치안비서관(치안감)으로 386 참모진과 근무한 경력이 있다. 그는 이들과 첫 만남에 대해 "유인태(대통합민주신당 국회의원) 정무수석 밑에 6명의 비서관이 있었는데, 나 외 5명은 모두 감옥에 갔다 온 사람들이었다. '이거 잘못 들어온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또 386 참모진이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회의 도중 '형'이라고 부르거나 밤늦게까지 토론했다고 해서 다음날 한낮이 다 되도록 자는 경우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수석회의 도중 불법시위로 연행된 사람들을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연행자들은 386 참모진의 친구나 선후배 관계였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386 참모진의 대미(對美)관도 언급했다. 허 전 청장은 "2005년 경찰대 졸업식장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 내외를 위해 따로 휴게공간을 마련했다. 벽엔 노 대통령이 부시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는 사진을 걸어 놓았다. 그런데 청와대 의전 팀이 이를 발견하고 경찰을 나무랐다. 결국 떼어 내고 말았다"고 전했다.

허 전 청장은 2005년 12월 시위 농민 사망사건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이유를 털어놓았다. 당시 황인성(신당 모바일선대위 공동위원장) 시민사회 수석이 먼저 사퇴를 종용했지만 거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문재인(대통령비서실장) 당시 민정수석이 '국회 예산 처리를 위해 민주노동당의 협조가 필요해 사퇴해 달라'고 부탁을 해 들어줬다"고 설명했다.

허 전 청장은 "나는 불명예 퇴진한 것이 아니다. 현 정부로부터 억울하게 이혼당한 여자와 같은 신세"라며 "퇴임 뒤 현 정부 실세로부터 경북도지사 출마 제의를 받았는데 마다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달 초 '허준영의 폴리스 스토리'(중앙일보 시사미디어)란 제목으로 자서전을 출간할 예정이다.

◆허준영 전 경찰청장=경북고.고려대를 졸업하고 외무고시에 합격한 뒤 외교관을 하다 경찰에 들어갔다. 서울경찰청장을 거쳐 2005년 제12대 경찰청장으로 취임했다. 그해 12월 서울 여의도 쌀 개방 반대 시위로 농민 두 명이 사망하자 자진 사퇴했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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