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향기] 아버지의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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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열심히 하지 말아라"라는 아빠의 목소리가 생각났다.

고2 기말고사 전날 밤, 시험 공부를 하는 막내딸에게 하시는 말씀이었다.

딸의 건강만을 걱정하시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열심히 해도 대학에 보내줄 수 있는 형편이 안 된다는 뜻이었다.

그땐 아빠.엄마가 한없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하고 싶은 공부를 열심히 하지 말라고 하시다니….

고등학교 3년 내내 1등 성적표를 받아 와도, 한번도 웃어주시지 않으셨던 아빠였다.

그래도 세 딸 중에 하나라도 대학이라는 곳에 보내야 한다는 엄마의 의지에 언니들을 제치고, 막내인 내가 서울에 있는 전문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타지에 있는 친척집에서 혼자 지내기란 쉽지 않았다.

밤 늦게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오는 길에는 항상 눈물만 났다.

뭐가 그리도 서럽고 외로웠는지….

결국 한 달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무엇에라도 쫓기듯 집으로 내려갔다.

한동안 위로도, 꾸짖음도 없으셨던 아빠께서 말씀하셨다.

경쟁률 1백대 1이 넘는 대학에 내가 합격했다고 해서 기뻤었다고….

그런데 이렇게 그만두고 오도록 아무 것도 못 해줘 미안하다고….

처음으로 딸 앞에서 눈물을 보이셨다.

그 날 밤 서울에서 힘들게 지내며 울었던 것보다 더 많이 울었던 것 같다.

그 다음해 같은 학교, 같은 과에 다시 지원했고, 합격 통지를 받았다.

다시 같은 학교를 가겠다고 했을 때 아빠.엄마는 아무 말씀도 않으시며 입학금을 내주셨다.

단 한번도 죄송하다는,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못 했다.

그 말조차 꺼내기가 죄송하고 감사했다.

2년이 지나 졸업을 앞두고 있는 지금, 어려운 시기지만 취직이 되어 첫 출근 소식을 아빠에게 제일 먼저 알려드렸다.

여전히 무뚝뚝한 목소리였지만, "잘됐다"는 그 한마디에 모든 의미가 담겼으리라 생각해 본다.

김경진(서울 서대문구 북가좌1동.2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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