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경>마지막주자 김순형 뒷심 진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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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남자 1천6백m 릴레이는 투혼을 유감없이 보여준 그야말로 한편의 드라마였다.릴레이는 사실상 한국의 취약종목.한국은 종전기록상 일본(3분1초35).중국(3분4초35)에 이어 3위(3분6초36)에 랭크됐던데다 3,4번주자인 이진일(李鎭 一.경희대)과 김순형(金順亨.경북대)은 불과 1시간여전 1천5백m에 출전,상당히 지친 상태여서 동메달도 감지덕지라며 기대밖이었다.
그나마도 1번주자 이언학(李彦學)이 스타트가 늦어 후미로 처지면서 포기해야 할 형편이었다.그러나 李는 막판역주끝에 3위로바통을 손주일(孫周日)에게 넘겨주면서 한국특유의 투혼의 싹이 보이기 시작했다.孫은 4백m에서 금메달을 놓친 한 풀이라도 하듯 앞서가던 주자들을 따라잡더니 급기야 바통터치 에어리어를 코앞에 두고는 선두 이나가키 세이지(일본)마저 추월했다.
이때 이나가키가 바통을 땅에 떨어뜨려 일본의 한국추격은 물거품이 됐다.3번주자 이진일과 김순형의 투혼도 놀라웠다.
특히 앞서 1천5백m에서 레이스도중 넘어지는 바람에 메달권밖으로 밀려났던 金의 투혼은 단연 압권이었다.앞서가던 金은 2백여m를 지나면서 이번대회 4백m 금메달리스트 이브라힘 이스마일(카타르)에게 선두를 내주고 사쿨춘 아크와트(태국)에게 마저 밀렸다. 金의 절정의 투혼이 빛을 발휘한 것은 마지막 1백m.
金은 4번코너를 돌자마자 스퍼트를 시작,간격을 좁히더니 결승테이프를 10여m 앞두고 마침내 선두로 복귀,감격적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날의 승리는 이와함께 카타르.태국등이 마지막 주자에 단거리스프린터를 배치한 반면 한국은 최후의 역전을 염두에 두고 1천5백m를「전공」,뒷심에서 앞서는 金을 배치한 것도 주효했다.
레이스가 끝난 뒤 환호하는 한국선수들과 얼굴을 감싼 채 트랙에서 울고있는 이나가키등 일본선수들,아연 침묵속에 빠진 관중들의 모습은 한국이 거둔 릴레이 금메달의 의미를 그대로 웅변하는것이었다.
〈히로시마=鄭泰守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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