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Movie TV] '미소' 박경희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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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은 강인하고, 고집스럽고, 지적이기까지 한 여자이지만 제가 봤을 때는 어리석은 사람이에요. 실은 영화에 나오는 모든 인물이 그렇죠. 저마다 자기식의 한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갑작스레 닥친 병마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삶의 우연 앞에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어리석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목요? 관객들이 이런 걸 통찰하고 난 뒤에는 입가에 자연스레 미소가 떠오르지 않을까요."

13일 개봉하는 영화'미소'를 만든 박경희(37.사진)감독의 말이다. 영화의 주인공 소정(추상미)은 대학원생인 남자친구 지석(송일곤)과 유학을 준비하던 중 자신이 튜블러비전(망막색소변성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시야가 점점 좁아져 실명까지 할 수 있는 이 병은 사진작가인 소정에게는 더욱 치명적이다. 이런 삶의 위기에서 소정이 선택하는 길은 통속적인 드라마와는 사뭇 다르다. 의지가 되어줄지도 모를 남자친구에게는 먼저 결별을 고하고, 할머니 장례를 치르러 오랜만에 내려간 시골집에서도 자신의 병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철저히 혼자만의 싸움에 몰입하는 소정의 고집을 능가하는 사람이 감독이다. 삶의 불가해성에 대처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라는 주제를 98분의 상영시간 동안 한순간도 타협없이 일관되게 밀어붙인다.

'미소'는 전혀 꾸민 데 없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주연배우는 물론이고, 소정의 가족이나 경비행기 강사같은 조연에 이르기까지 누구 하나 빈 데 없는 사실적인 연기가 인상적이다. '미소'는 순제작비 3억원짜리 영화다. 소정이 신라 고분을 촬영하다 비상하는 선녀상에 주목하는 장면에서는 컴퓨터 그래픽이, 더 늦기 전에 넓은 시야를 만끽하기 위해 경비행기 조종을 배우는 장면에서는 항공촬영이 동원된 것까지 감안하면 놀랄만한 일이다. "시나리오를 보고는 다들 좋다고 했는데,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투자를 받지 못했어요. 부족한 예산은 열정과 집념으로 메웠어요. 실제 투입된 노력은 10억원 이상입니다."일찌감치 출연약속을 한 추상미씨는 제작여건이 달라지자 약속을 뒤집는 대신 출연료를 받지 않았다. 한국영화아카데미를 나와 박광수 감독.임순례 감독의 조감독을 거친 박경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15세 이상 관람가.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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