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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국회비준 상정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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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내일 17대 정기국회가 막을 내린다. 예년에는 12월 중순까지 정기국회가 열리지만 대선 정국으로 인해 조기 방학을 하는 셈이다. 17대 국회는 FTA특별위원회를 구성해 한·미 FTA를 국회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검토했고, 국익 차원에서 미국과의 협상 과정을 점검해 왔다. 당리당략에 따라 극단적인 주장이 오가기도 했지만 사상 처음으로 국회 차원에서 행정부의 통상협상 전 과정을 견제하며 국익 극대화를 위해 국민을 대변한 것으로 평가된다.

한·미 FTA 협상은 우리나라 통상 역사상 가장 중요한 협상이었고, 가장 많은 전문인력과 이해 관계자들이 참여했다. 또한 국회특위도 주요 이슈에 대한 입장을 정부 관계자에게 체계적으로 전달한 최초의 협상이었다. 결과적으로 한·미 FTA 협상은 국익에 부합하는, 국제적으로 손색이 없는 우수한 내용으로 타결됐다.

한·미 FTA 경제이익은 국회 비준 동의안이 처리되고 이행되지 않으면 사실상 ‘그림의 떡’이다. 하지만 올 하반기 이후 국회는 대선 정치판에만 골몰하며 우리 경제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한·미 FTA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한·미 FTA는 국내 못지않게 외국에서도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외국의 통상 전문가들은 수준 높은 FTA로 우리 경제가 몇 단계 발전을 이룩할 것이며, 협상력 및 동아시아 내 위상 제고로 현재 논의가 활발한 동아시아 경제통합에서도 우리나라가 논의를 주도해 나갈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또한 유럽(EU)·중국·일본 등은 우리나라와의 FTA 추진을 최우선 통상 현안으로 설정하게 되었다.

현재 협상이 진행 중인 EU와의 FTA도 한·미 FTA가 기폭제가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통상 관계자가 한·EU FTA를 거론하면 동아시아는 FTA 관심지역이 아니라고 무시했던 EU가, 한·미 FTA가 서명된 이후 우리나라와의 FTA 타결에 전념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과 일본 역시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FTA를 추진할 것을 우리 정부에 공식 요청하고 있다.

이번 주 브뤼셀에서 한·EU FTA 5차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한·EU FTA 협상이 잘 안 되더라도 우리나라는 한·미 FTA가 있기에 서두를 것 없다는 자세로 협상에 임하고 있어 우리나라가 거대 EU보다 우위에 서서 협상을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한·미 FTA 국회 비준이 지연된다면 우리의 협상력은 급격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

만약 이번 17대 국회에서 한·미 FTA 비준을 처리하지 못하면 내년에 구성될 18대 국회에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FTA 이행 지연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물론 지금까지 국회 FTA특위 및 관련 상임위원회에서 검토한 내용은 무시될 것이다. 새로 구성되는 상임위가 협정을 이해하고 처리 방안을 논의하는 데도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이다. 경우에 따라 내년 하반기에도 본격적인 심의가 어려울 수 있다.

일반 국민의 평가에 의하면 한·미 FTA는 참여정부의 최대 치적으로 꼽힌다. 심지어 야당인 한나라당도 현 정부의 한·미 FTA 추진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또한 정부도 이미 상당한 규모의 농업 지원대책을 수립한 상태다. 기존 119조원의 농업지원 예산에다 한·미 FTA 대책으로 향후 10년간 24조원을 추가 지원키로 11월 6일 국무회의에서 결정되었다. 2006년 우리나라 농업생산액이 26조원이고, 한·미 FTA 농업피해가 총 1조원 내외라는 점을 고려하면 ‘퍼주기’ 논란 재연이 불가피하다.

‘선대책 후비준’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국회가 국익 차원에서 판단해야 할 시점이다. 이번 정기국회가 폐회되는 내일이라도 국회 FTA상임위(통일외교통상)가 한·미 FTA 비준을 안건으로 상정하고, 대선 후 연말에 임시국회를 열어 처리하기 바란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