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중인물탐구>"인간극장" 포철 기성役 이영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포항제철의 핵인 제4고로(용광로)에 중병이 생겼다.보수시기를놓친 탓에 단열벽이 녹아 외부철판까지 열을 받았고,한쪽편이 우그러드는 대형사고가 발생한 것.아직 4~5년은 더 써야 하는 40층 높이의 거대한 고로를 교체하려면 수백억원 이 소요되고 고위층에서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수리해 쓰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KBS1 『인간극장』(토요일 밤9시40분)「마이더스의 손」편에서 포철의 기성(技聖)으로 등장하는 연봉학부장(이영후扮)에게 이 불가능한 4고로의 보수책임이 떨어진다.이 고로는 그의 관할업무가 아닌 탓에 그를 아끼는 동료들은 「회사측 의 음모」로 치부하며 걱정해 준다.
『자넬 희생양으로 삼은 거야』『회장이 다그치면 「기성도 못하는 걸 봐라,우린 책임이 없다」는 걸 말하려는 거야』『중학교만나온 자네를 기성까지 시켰으니 한번 시험해보자는 거지』『남이 눈 똥에 주저앉은 거야.』 밤새 제도기를 잡고 끙끙거리다 새벽길로 뛰쳐 달리는 연기성의 독백에서 극적반전이 이뤄진다.
『당신들은 아무도 몰라.4고로는 당신들이 떠맡겨준게 아니라 내가 오래전부터 찾고 있던 일감이야.
인생은 그렇게 긴 게 아니야.평생에 자기의 먹이를 사냥할 기회는 그리 많은 게 아니야.난 그걸 놓치고 싶지 않은 거야.』그리곤 그는 포철의 건설당시 자신의 「현장10년」자존심을 무참히 깨트려버렸던 직속상관 김이사의 말을 되새긴다.
『자네가 기술자야.남 못하는 거 하는게 기술자지 연장있으면 누가 못만들어.세상에 태어나서 두가지 사는 방법이 있어.
하나는 밥쟁이로 밥이나 처먹으며 사는 거고 하나는 장인으로 작품을 만들며 사는 거야.』 연기성의 4고로에 대한 도전은 우리가 회피하고 돌아가려했던 모든 것들,개성과 자유라는 시대의 용어로만 쉽게 풀이되곤 했던 「일과의 관계」를 곱씹게 해준다.
독기어린 눈으로 호랑이가 토끼 한마리를 잡더라도 최선을 다한다는 「쟁이정신」이 오랜만에 「연기쟁이」이영후를 통해 자연스럽게 묘사되고 있다.
『4고로만 보면 그저 답답하고 캄캄합네다.』투박한 이북사투리의 태연자약해하는 겉모습은 타깃을 설정해 초점을 흐트리지 않는그의 속내와 시종 교차되며 잊혀져만가는 「쟁이정신」을 흥미있게접하게 해준다.
〈崔 勳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