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VS 반이명박 … 대선 소용돌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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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창원에서, 이회창 무소속 후보는 광주에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왼쪽부터)는 서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오종택·강정현 기자, [뉴시스]

대선 D-30일.

대선의 '마지막 뇌관'이라는 김경준씨의 검찰 수사에 속도가 붙으며 소용돌이가 거세지고 있다.

김경준 변수는 대선 구도를 단숨에 '이명박이냐, 반(反)이명박이냐'의 구도로 바꿔 놨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정몽준 후보의 단일화 러브샷이 '이회창이냐 반이회창이냐'는 구도를 만들었던 것과 흡사하다. 5년 전 D-30일은 노무현-정몽준 후보의 단일화 협상이 막바지 고비를 달리고 있을 때다. 노-정 단일화는 이회창 후보에게 패배를 안겨 줬던 '한 방'이 됐다.

5년 전의 이회창 후보처럼 고공행진을 해온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겐 떠올리기 싫은 '11월의 아픈 추억'이다.

그동안 이회창 후보를 다루는 데 조심스러웠던 이명박 후보 측이 본격적인 공격으로 전환한 것도 김경준씨 귀국이 불러 온 '이명박 대 반이명박' 구도 때문이다. 18일 한나라당은 "이회창씨는 정권교체를 이룰 유일한 선택인 이명박 후보를 돕든지 정권 연장세력인 '범여권의 제2중대'임을 인정하든지 양자택일하라(박형준 대변인)"고 직격탄을 날렸다.

보수 진영의 '이회창 스페어 후보론'을 진화하고 '이회창 지지=정권교체 무산'의 등식을 일깨우기 위한 수순이다. 이에 대해 이회창 후보 측 조용남 부대변인은 "백만대군을 갖고도 단기필마의 이회창 후보가 그리도 무서운가"라고 반박했다.

언론사 여론조사의 흐름도 아직 이명박 후보를 중심에 두고 있다.

◆부동층 증가 유동성 높아져=18일 공개된 언론사들의 여론조사에선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39.5%(MBC)와 41.4%(SBS)의 지지율로 1위를 고수했다. 일부 신문사들의 여론조사도 큰 차이가 없다.

일주일 전 조사에 비해 이명박.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2~3% 빠지고, 정동영 후보의 지지율이 소폭 올랐다.

이회창 후보의 경우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2위를 지켰으나 SBS 여론조사의 경우 1%포인트 차이로 정동영 후보에게 2위 자리를 내줬다. 격랑이 일단 2, 3 위 싸움부터 덮쳐가는 양상이다.

그러나 2, 3위 지지율을 합쳐도 이명박 후보를 따라잡지 못하는 결과는 김경준 변수에 대해 이들이 반이명박 공동 전선을 만들도록 몰아가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부동층의 비율이 늘어가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어떤 후보도 선택하지 않겠다는 유권자의 증가는 대선판의 유동성을 높이고 어느 시점 한쪽에 확 쏠림으로써 판세를 순식간에 뒤집을 요인이 된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유권자들이 김경준 변수의 향배를 숨을 죽인 채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상황은 폭풍전야의 고요일 수 있다. 검찰의 BBK 수사 폭발력과 국민의 반응 정도를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명박 후보 측 박형준 대변인은 18일 "여론조사 결과 이명박 후보 지지층 2~3%가 부동층으로 빠진 듯하다"며 "5% 정도의 이탈을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낙폭이 작다. 큰 변수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면서 이명박 후보 측은 "보수 지지층에 '이명박의 스페어'로 어필했던 이회창 후보의 상승세는 일단 꺾였다"고 주장했다. '이회창 출마와 김경준 귀국'이란 두 가지 변수로 궁지에 몰렸던 이명박 후보가 박근혜 전 대표의 한 손을 잡고 '이회창 수렁'에선 일단 탈출했다는 주장이다.

현재 이명박 후보가 받고 있는 40% 안팎의 지지율은 5년 전인 2002년 대선 한 달을 남겨놓았을 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받았던 지지율 수준과 비슷하다. 당시 1위를 질주했던 이회창 후보는 마지막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노무현-정몽준 후보의 단일화 러브샷' 한 방에 무릎을 꿇었다.

◆이명박 협공하는 후보들='BBK와 김경준'의 파괴력은 이명박.이회창 후보의 단일화 논의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지지율 차가 계속 유지되면 이회창 후보를 상대로, 지지율 차가 좁혀지면 두 사람 모두에게 보수 진영 유권자들의 '후보 단일화' 압박이 거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날 대선 주자들 간 BBK 공방은 더욱 격해졌고, 대선 승리를 향한 발걸음도 바빠졌다.

이명박 후보는 경남 창원에서 열린 필승결의대회에 참석해 "국민을 위한 정책은 내놓지 않고 서로 비난하며 남이 잘못되기만 기다리는 정치 행태를 보며 한 없는 안타까움을 느낀다"며 "수많은 후보가 나를 음해하고 쓰러뜨리려 해도 결코 흔들리지 않겠다. 흔들릴 수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BBK 논란에 대해선 "죄를 짓고 도망간 한 젊은이의 얼굴을 쳐다보며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을 보며, 한 없는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를 찾은 이회창 후보는 "어느 지역, 어느 세력의 대통령이 아니라 발로 뛰는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주장했다. 기자 간담회에선 "호남에서도 새로운 이회창을 보게 될 것이다. 두 자릿수 지지율이 되리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후보 측이 지핀 '범여권 2중대론'을 의식한 듯 "BBK 문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고 말을 아꼈다.

정동영 신당 후보는 서울 당산동 당사에서 열린 '국가비전 선포식'에서 ▶2012년까지 250만 개 일자리 창출 ▶글로벌 톱10 산업 육성 ▶창조형 중소기업 5만 개 육성 등의 경제 전략을 발표했다. 정 후보는 "재벌의 은행 소유와 규제 철폐에만 골몰하는 재벌기업 출신 후보는 (이 사회의) 윗목과 아랫목을 이을 수 없다"며 "만일 주가조작, 자금 세탁, 횡령.사기 혐의가 벗겨지지 않은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국민의 자존심은 어찌 되겠느냐"고 이명박 후보를 공격했다.

서승욱.김경진 기자
사진=오종택·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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