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대전 같은 ‘삶의 대격변’ 일어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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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호 14면

“외환위기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삶의 양식이 바뀌는 ‘대격변’이 맞다.”

외환위기 겪은 외국은

영국 서리 대학 팀 잭슨(경제학) 교수의 말이다. 외환위기라는 말로는 1976년 영국 위기 이후 변화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영국과 멕시코는 잭슨 교수가 말한 대로 76년과 94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전혀 다른 나라’가 됐다. 전문가들은 외환위기 이후에 대해 서로 다른 평가를 내놓고 있지만,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는 데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영국의 위기: 절정의 순간 엄습
2004년 영국의 독립적인 경제 연구소인 뉴이코노믹스재단(NEF)이 흥미로운 분석 결과를 내놨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았던 79년, 영국인 삶의 질이 산업혁명 이후 가장 높았다는 것이다. 개인소득 증가율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범죄율도 아주 낮았다. 그런데 그해 9월 9일 노동당 출신 총리인 제임스 캘러헌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73년 오일 쇼크 이후 무역수지가 악화하고, 2년 동안 경제가 뒷걸음질친 여파였다(왼쪽 그래프). 급락하는 파운드화 가치를 방어하려고 하는 바람에 외환보유액이 36억 달러 수준으로 줄었다.

IMF는 설립 이후 당시까지 가장 많은 긴급자금인 33억 달러를 꿔주기로 했다. 대신 고금리와 재정 긴축, 민영화 처방을 요구했다. 구제금융을 받은 영국 경제는 빠르게 안정되기 시작했다. 위기 첫해 성장률이 2.6%를 기록해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 늪에서 빠져 나왔다. 80~81년 다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기는 했지만, 이듬해인 82년 IMF 체제에서 벗어났다. 8년 만의 일이었다.

대고통(Big Pain)

외형적인 경제는 빠르게 안정됐지만, 영국인들은 이후 20년 동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고통스러운 기간을 보내야 했다. 79년 노동당 정부를 대신해 들어선 보수당 마거릿 대처 정부는 구조개혁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주요 국영기업 민영화를 추진했고, 철강과 조선 등 국제 경쟁력을 잃은 산업을 포기했다. 86년 금융산업 규제를 대거 철폐했다(빅뱅). 후유증이 만만찮았다. 위기 직전과 직후 2~3%대에 머물던 실업률이 상승하기 시작해 80년대에는 6~7%, 90년대 초반에는 8%선까지 치솟았다. 실질 임금 감소와 더불어 소득 불평등도 악화됐다. 0~1 사이 숫자로 불평등 수준을 표현하는 지니계수는 위기 순간 0.25 정도였지만 이후 가파르게 상승해 0.35선을 육박했다. 이 수치가 1이면 완전히 불평등하다는 뜻이다.

‘대고통’은 위기 20년째인 96년 이후 잦아들었다. 실업률이 5% 이하로 떨어져 유럽에서 가장 낮은 나라로 꼽힌다.

그런데 영국 위기는 IMF의 구제금융 및 경제정책 처방에서 중요한 계기였다. 이후 고금리와 재정 긴축, 민영화 처방이 IMF의 ‘기본 처방전’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또한 영국은 위기를 겪은 나라 국민이 겪는 구조개혁과 삶의 양식 변화를 보여주는 전형이기도 하다. 영국인은 국영기업-노동조합 타협에 따른 꾸준한 임금 상승 대신 자산 소득 증가를 바탕으로 미래를 설계하는 쪽으로 전환했다. 이후 주식과 주택 등 자산가격 급등락에 따라 개인의 생활수준이 급격히 변하고 있다.

멕시코 위기: 준비 안 된 개방의 결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발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농민반군 치아파스 봉기, 집권당 대선 후보 피살, 경상수지 적자 누적, 페소화 가치 급락, 자본 이탈…. 94년 12월 21일 멕시코 정부가 미국과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까지 주마등처럼 진행된 상황이다. IMF는 영국 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고금리와 재정 긴축, 민영화 처방을 냈다. 그 결과 95년 한 해 동안 멕시코 실세 금리는 100%나 올랐다. 증권시장은 폭락했고, 18개 은행 중 14개 은행이 문을 닫았다. 급격한 개방과 정치적 불안이 원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멕시코 경제는 95년 -6% 성장을 기록한 이후 급격히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96년에 5%대 성장을 달성한 이후 인터넷 거품과 9·11 테러 여파 직후 찾아온 침체 시기를 빼면 4~7% 정도 성장을 구가했다. 경상수지 적자도 94년 294억 달러에서 95년 15억 달러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특히 2003년 이후에는 국제 원유값 상승으로 상당한 흑자를 자랑한다. 멕시코 증시는 94년 금융위기를 겪은 지 10년 만인 2004년까지 신고가를 52차례나 경신했다. 멕시코 기업들의 이익이 큰 폭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해 경제가 4% 성장한 반면 기업 이익은 139~224% 증가했다. 그러나 농민은 사실상 몰락했다. 수백만 명이 고향을 떠나 미국 등에서 불법 이민자로 전전하고 있다. 도시 임금 생활자들은 영국인과 마찬가지로 자산가격 상승이 낳은 과실을 따먹기 위해 저축보다 투자를 더 많이 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노선

아시아 금융위기가 급습한 97년 마하티르 총리는 IMF 구제금융을 거부하고 고정환율제와 자본통제를 실시했다. 미국 전문가들은 말레이시아 경제가 몰락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성장률과 실업률 등은 한국과 태국·인도네시아 등 위기 당사국과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 98년 경제성장률이 -10%까지 곤두박질한 뒤 이듬해인 99년 이후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 인도네시아나 태국보다 더 높은 성장률을 구가하기도 했다. 자본통제를 차츰 완화해 2000년 이후에는 사실상 자유화됐다. 단순 비교가 어렵지만, 전문가들은 IMF 처방을 비판할 때 말레이시아를 근거로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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