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6년을 달려 온 '천원의 기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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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난해 3월 '사랑의 리퀘스트'에 소개됐던 박성주예요. 어릴 때 온 몸에 화상을 입고, 두 손까지 조막손이 됐던 그 성주예요. 방송 후 제겐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온전하진 않지만 수술로 열 개의 손가락을 갖게 됐어요. 제 소원, 일반 초등학교에 다니는 것도 이뤄졌어요. 열심히 공부해 불쌍한 아이들을 돕는 의사 선생님이 될 거예요."

1천원의 기적.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는 사자성어의 뜻을 쉽게 이해시켜 주는 KBS의 자선 프로그램 '사랑의 리퀘스트'가 오는 14일로 방송 3백회를 맞는다. 외환위기의 그늘이 드리워진 1997년 10월 방송을 시작했으니, 햇수로도 6년이 넘는 세월이다. 시청률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시청률 10%도 안 되는 이 프로가 프라임 타임대(토요일 오후 7시10분)를 지켜 왔다는 사실이 놀랍다.

'사랑의 리퀘스트'는 방송이 사회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시청자들이 걸어주는 한 통의 전화는 소아 백혈병 환자들을 일으키기도 했고, 실의에 찌든 노숙자들의 어깨를 펴게 하기도 했다. 제작진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의 모금액은 3백52억6천여만원. 이 중 전화 한 통당 1천원씩 적립되는 ARS 모금액만 3백23여억원이다. 1천원짜리 지폐로 바꾸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다섯번 왕복하고도 남는 금액이라고 한다. 1천원짜리 한 장도 사랑으로 모으면 이렇게 커다란 무게가 되는 것이다. 이 돈은 검증 절차를 거쳐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구당 2천만원 한도 내에서 쓰여진다.

켜켜이 쌓인 세월만큼 사연도, 기쁨도 풍성하다. 24주 만에 8백g과 9백80g이라는 작은 몸으로 세상에 나온 쌍둥이 남매 정환이와 민아. 인큐베이터 안에서 가녀린 숨결을 이어가는 이들의 모습은 2002년 방영 당시 많은 시청자를 안타깝게 했다. 이 아이들은 이젠 누구보다 건강한 아이로 자라고 있다. 또 그 사이 '자선 예찬론자'가 된 연예인들도 많다. 방송인 강호동은 5천만원을 성금으로 냈고, 그룹 '신화'의 김동완은 세 번에 걸쳐 3천만원을 기탁했다.

박환욱 책임 PD는 "사랑이란 나눌수록 커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앞으로는 후원이나 결연을 더 유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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