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랑>戰警과 웨딩드레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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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독일에서 공부하던 친구가 귀국해서 그냥 서울 거리를 걷고 싶다길래 옆에서 같이 걸어주던 날이다.광화문.시청.남대문 등을 어정어정 걷다가 셔츠도 하나 사고 실내화도 한 켤레 사고 그랬다.그렇게 우리는 중앙극장을 지나 명동성당으로 들 어가는 언덕빼기를 걷고 있었다.친구는 독일에 있어서라고 치고,나는 서울에살면서도 어찌어찌 명동거리를 나가보기는 너무 오랜만이었다.다니던 대학이 남산턱에 있어서 한때는 명동을 뒷마당삼아 지내던 때도 있었는데.
젊다는 것이 고통이던 시절,한번도 웃지 않고 지내는 얼굴들이수두룩했었다.노동자들,교직자들이 번갈아가며 명동성당에서 단식을벌였던 그때의 명동거리는 어느 하루 쉴 날 없이 최루탄이 터졌었다.시위하는 사람들보다 어떤 땐 전경들이 더 많았다.나중엔 명동의 상인들이 플래카드를 걸고 데모를 했었다.데모내용은 제발명동에서 데모 좀 그만해달라,생계를 꾸려 나갈 수가 없다,였다. 이 생각 저 생각에 젖어 명동성당 앞 옛날의 DJ가 있던 음악다방 대신 내부가 환히 들여다보이는 커피전문점 앞을 막 지날 때다.친구가 내 옆구릴 찔러댔다.그녀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에 전경 두명이 가로수 밑에 차렷자세로 서있었는데 그들이 서 있는 바로 앞은 웨딩드레스 전문점이었다.일부러 그런건 아니었겠지만 전경들은 웨딩드레스를 마주보고 서 있었다.유리문 안에서 화사하게 반짝이는 웨딩드레스.한 예비신부가 가슴 깊게 파인 웨딩드레스를 입어보고 수줍게 웃고 있는게 보였다.그 모습을 차렷하고 선채로 바라보며 근무중인 전경.
그들은 눈앞의 웨딩드레스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80년대가 뼈아프게 지나간 자리에서 마주친 묘하게 대조를 이루는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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