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가 이번엔 '테러법 시한 폭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일본 정치권이 이달 말부터 내년 1월 사이 언제든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를 치를 수 있는 '시한 폭탄' 정국에 빠져들었다. 일본에서는 중의원이 해산되면 총선을 치러 여야 의석을 새로 구성해야 한다. 다수 의석을 차지하면 정권 교체가 가능하므로 야당인 민주당은 기필코 중의원을 해산시키겠다는 태세다.

이처럼 조기 총선 가능성이 대두한 것은 민주당의 결사 반대에도 불구하고 13일 자민당이 해상자위대를 언제든지 해외에 파병할 수 있는 '신테러대책특별법'을 중의원에서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이 법안은 일본이 2001년부터 인도양에서 미국 등 10여 개국의 군함에 연료를 제공하는 테러대책특별조치법의 후속 법안이다. 1년마다 국회 승인을 받아야 하는 기존 법안이 야당의 반대로 갱신되지 못하면서 자민당이 국회 동의가 필요 없는 일반법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민주당은 인도양에서의 테러 방지 군사작전은 미국이 독자적으로 펴는 활동이라는 이유로 일본의 파병 활동을 반대해 왔다. 유엔의 결의가 없는 군사활동은 해외파병을 금지하는 일본 헌법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자민당은 "국제사회와의 약속"이라며 참의원이 새 법안을 부결시키면 이를 다시 중의원으로 돌려보내 재의결을 강행할 예정이다. 일본에선 헌법 규정에 따라 중의원이 재의결을 통해 참의원 의결을 뒤집을 수 있다.

이는 민주당이 희망하는 '시나리오'다. 이 법안이 중의원에서 재의결되면 민주당은 "무리한 국정 운영에 대해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총리에 대한 문책 결의안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총리 문책 결의안이 제출되면 총리는 어쩔 수 없이 총선을 실시해 국민의 신임을 물어야 한다.

1955년 자민당 체제가 성립된 이후 62년 만에 제1야당 단독으로 정권교체를 노리는 민주당과 국민의 신뢰를 잃고 비틀거리는 자민당이 정권 수호와 교체를 놓고 한바탕 격전을 치르게 되는 것이다. 일 언론들은 자민당과 민주당이 마주 보고 달리는 기관차처럼 돌진하는 한 연내 총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