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차라리 양비론이 낫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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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우리는 매사에 '딱부러지는' 것을 좋아한다. 검으면 검다, 희면 희다고 확실하게 밝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사는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거무스레하거나 희끄무레한 것까지야 조금 억울하더라도 상대의 서슬이나 주변 분위기를 받아들여 '검다''희다'라고 대답해 줄 수 있다. 하지만 노랗거나 파란 것까지 검거나 희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흑백 논리는 힘이 세다. 이 논리로 세상을 보면 피아(彼我)나 우적(友敵)이 선명하게 구분된다. 목표가 뚜렷하니까 할 일이 명확해지고, 덩달아 세상사는 맛도 살아난다. 게다가 보~너스!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끼리의 진하디 진한 동료 의식이 선물로 주어진다. 내가 상대 진영에 기관총을 쏴대면 곁의 동료는 곡사포로 지원한다. 저녁이면 끼리끼리 모여 서로를 칭찬하고 격려하면서 자신의 정당성을 확인하고 안도하는 의식을 치른다.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행동거지나 말본새로 미루어 '딱지'부터 붙인다. 검은 편 아니면 흰 편. 그의 생각이 노랗든 파랗든 상관없다. 흑과 백, 둘 중 하나다.

상대와 싸울 때는 초보적인 요령부터 익혀야 한다. '말죽거리 잔혹사'나 '품행제로' 시절부터 배운 요령. 먼저 센 놈 하나를 골라 박살낼 것. 그러면 설령 골목길에서 여러명에게 둘러싸였더라도 무사히 헤쳐나갈 공산이 커진다. 내 힘이 어느 정도 커지면 더 세 보이는 상대를 찾아나선다. 추기경? 좋다. 한번 찔러 본다. '민주화운동에서 金추기경의 모습이 과대평가된 대목이 많다는 사실을 알 사람은 다 알면서도 침묵해 왔다'는 아리송한 문구도 섞어넣는다. 민주화운동에 기여한 어떤 인사가 후배들과의 술자리에서 반드시 '특별한 2차'를 고집했던 일이 머리에 떠오르지만 애써 외면한다. 학생운동권 간부로 활동하던 5공화국 시절에 단식농성을 선언한 뒤 밤마다 학생회관 뒤켠에서 빵이랑 음료수를 실컷 먹다가 외부인에게 들켰던 어떤 사람의 모습도 머리에서 지운다. 그들은 우리 편이니까.

이분법(二分法)에 젖은 이들에게 무지개는 빨강 아니면 보라색이다. 주황.노랑.초록.파랑.남색은 빨강으로 귀순하든가, 보라색이 되어 나의 먹잇감 노릇을 해야 한다. 한때 그들이 공격한 논리가 양비론(兩非論) 또는 양시론(兩是論)이었다. 그렇다. 독재정권 시절에는 상당한 공감을 산 주장이었다. 치사하게 둘 다 그르거나 둘 다 옳다는 식의 논리를 펴는 사람들은 대개 수상한 저의를 품고 있었다. 뒤가 구리거나 잃을 게 많은 사람들이었다. 단비론(單非論)이나 단시론으로 딱부러지게 말해야 했다.

그런데 세상이 변했다. 이제는 대통령도 '티코'와 '리무진'으로 대선자금의 차이를 설명하지 "티코조차 못된다"라고 잡아떼지는 않는다. 과거엔 '오십보 백보'가 '똑같은 놈'이란 뜻이었는데 지금은 경우에 따라 '오십걸음이나 차이가 나네'라는 풀이도 가능하게 됐다. 하지만 적지 않은 이들은 '이분법의 추억'을 잊지 못하고 "너는 완전히 나쁘고 나는 완전히 옳다"라고 넋두리한다. 한신대 윤평중(尹平重)교수는 이를 두고 '서로를 각기 수구냉전 집단과 민족 배반자라고 도식화해 딱지 붙이고, 자신들만이 객관적 진리를 독점한 듯 강변하는 태도'라고 지적했다. ('우리 안의 이분법'.생각의 나무)

덜 강해 보일지라도 흑백논리보다는 정교한 저울추를 갖춘 양비론이 진실을 더 잘 대변한다. '올인'이 아니라 합리적인 베팅이다. 무엇보다 각박하거나 그악스럽지 않아서 좋다. 폭력성도 덜하다. 그렇다면 나는 양비론을 택하겠다.

노재현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