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산책] 이젠 '한·일 FTA'합의 모을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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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의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고 낙담하거나 '우리는 안 돼'하는 자괴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과거 수십년 역사를 되돌아볼 때 아무리 우리가 매사에 과격해도 위기에 몰리면 언젠가 깨어나 어렵지만 합리적인 선택을 해왔기 때문이다.

수출로 성장하고 먹고살아온 우리 입장에서, 또 국내외 불안으로 움츠러들 대로 움츠러든 경제 상황으로 미뤄볼 때 지금 우리는 분명히 위기적 갈림길에 서 있다.

그래서 감히 앞을 내다보건대, 앞으로 한두번 더 '농촌당' 국회의원 몇명이 무책임의 상징이 되고, 국회가 만신창이가 되고, 그 과정에서 한국 전체가 국제적 '바보' 가 되고 나면 우리가 다시 깨어나 한.칠레 FTA를 통과시킬 것이다.

사실 우리에게 한.칠레 FTA는 'FTA학교'였다. 또는 일본과 같은 나라와 제대로 된 FTA '본 게임'을 벌이기 전에 FTA 협상의 노하우를 몸으로 배우기 위해 일부러 치러본 스파링이기도 했다.

한.칠레 FTA가 앞으로 우리가 체결해야 할 수많은 FTA와 또 지금 매진하고 있는 '동북아 경제 허브'로의 첫걸음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한.칠레 FTA를 통해 우리가 배운 게 딱 하나 있다.

새로운 대외정책의 추진에 앞서 국내 부문 또는 이해집단 간의 합의 도출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끈질긴 설득과 이해조정을 통해 우리 전체의 뜻이 미처 모이기도 전에 공무원이나 전문가 몇명에 의해 협상이 추진되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됨을 배웠다.

우리는 지금 한.칠레 FTA와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지 모른다. 올해부터 우리가 추진하려는 한.일 FTA 등과 관련해 사회적 합의 도출을 위한 별다른 노력이 엿보이지 않는다.

한.일 FTA는 1억7천만명의 인구가 5조달러 넘게 생산해 내는 지역을 하나의 시장으로 묶는 작업이다. 경제 교류에 있어 양국이 서로에게 의미하는 것으로 보나, 양국 간에 엄연한 경제.기술적 격차로 보나 한.일 FTA는 그 자체만으로도 만만찮은 일이다. 게다가 양국의 문화.역사적 관계와 동북아의 외교안보적 상황을 고려할 때 한.일 FTA는 양국뿐 아니라 동북아 전체 구도에 심대한 변화를 예고하는 사안이다.

지금부터 경제 부문뿐 아니라 모든 부문과 이해집단이 나서서 나라 전체의 뜻이 무언지 의견을 모아도 시원찮을 판에 우리가 또 '강 건너 불을 보듯' 방관자로 남아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김정수 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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