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보자" 미국 X세대 빚더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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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X세대는 소비 지향적인 세대로 알려져 왔다. 조사를 해보니 상황이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퇴직 후 무일푼으로 깡통을 찰 만큼 재정 사정이 안 좋았다고 MSNBC 인터넷판이 8일 보도했다. 증권사 찰스 슈왑이 미국의 X세대 5000명을 조사한 결과다.

X세대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축은 40대에 접어들었다. 그런데도 조사 대상 5000명 중 62%는 빚이 있거나, 벌이가 시원찮아 퇴직 이후를 위한 저축을 한 푼도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 조사 대상 중 여성 62%는 "지금까지 한 번도 투자 상품에 가입한 적이 없다"고 응답했다.

경제 개념을 모르는 정도도 심각했다. 여성 중 65%와 남성 중 48%는 뮤추얼 펀드가 어떻게 운용되는지 모른다고 털어놨다. 금리가 오르면 채권 수익률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사람도 65%나 됐다.

워싱턴DC의 연구기관 '소셜 테크놀로지스'의 지오 반 리모텔 연구원은 "X세대는 저축하는 세대가 아니라 소비하는 세대임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멜라니 켈러(35)도 이 사실을 인정한다. 지금까지 퇴직 연금에 넣어 놓은 돈은 고작 3000달러 정도. 켈러는 허겁지겁 연금에 돈을 붓는 대신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 있는 집을 사기 위해 6만 달러를 모으고 있다.

리모텔 연구원은 "X세대 중 상당수는 대학 학비 융자금을 아직도 못 갚아 허덕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 아이가 태어난 후엔 아이 대학 교육비를 모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퇴직 이후 준비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금융 회사들은 이런 X세대를 노린 맞춤 상품을 내놓고 있다. 퇴직 연금 운용사인 프린시펄 파이낸셜 그룹은 퇴직 연금 계좌에 돈을 붓는 고객에게는 인터넷에서 무료 음악을 내려받을 수 있게 해준다. 자사에 퇴직 연금을 맡긴 회사들에 무료 재정 카운슬러도 보내준다. 찰스 슈왑은 연금 예금을 100달러부터 할 수 있도록 소액 상품을 선보였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연방 정부가 운용하는 연금은 2040년에 바닥날 처지다. X세대들이 집중적으로 퇴직할 때와 맞물린다. 게다가 이제 미국 회사는 대부분 퇴직금을 운용해주지 않는다. 각자 알아서 퇴직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 그런데도 상당수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차니 투자그룹의 더그 차니 사장은 "X세대들이 당장 연봉의 15%를 퇴직 이후를 위해 모으기 시작하지 않으면 70세까지 뼈 빠지게 일해야 겨우 먹고살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지영 기자

◆X세대:1960~70년대에 태어난 세대를 말한다. 90년대부터 소설과 미디어.마케팅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기존 가치나 관습에서 자유롭고 개인주의적이며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빠져 산다. 감성과 패션을 중요시하며, 소비 지향적이다. 공허함.우울함.비관주의.냉소주의로 삶을 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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