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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주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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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유치원생 딸아이가 요즘 즐겨 입에 올리는 단어가 ‘생각주머니’다. 규칙을 잘 지키거나 친구를 배려할 때 유치원 선생님으로부터 “생각주머니가 크다”는 칭찬을 듣는단다. 비물질적인 대상도 어린이에게 설명할 때는 이처럼 물질적인 것에 기대 설명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내 어릴 적 경험에 비춰 보면 아이들은 주로 몸과 물질의 경험에 의지해 세상을 이해한다.

네댓 살 때 길을 가다가 언어장애가 있는 걸인을 본 적이 있다. 그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저 사람은 옛날에 말을 너무 많이 한 게 틀림없어. 말은 사람 몸에서 나오는 건데, 말을 많이 하면 항아리가 비듯이 몸속의 말이 다 없어지겠지. 그러니까 나도 이제부터는 말을 조금씩만 하자’. 그날 심각하게 ‘묵언수행’하는 내 모습을 보고 어머니가 이상히 여겨 물어오셨다. “주헌아, 왜 그러니? 무슨 기분 나쁜 일 있어?” 몇 시간이나 말을 아끼던 나는 어머니의 근심스러운 낯빛에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내 고민을 들으신 어머니는 박장대소하시며 그게 그런 게 아니라고 나를 다독이셨다.

비물질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아니 비물질적인 것조차 물질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아이들의 의식은 그들의 미숙한 사고 능력을 드러낸다. 하지만 인간세상에서 비물질적인 것은 수시로 물질적인 것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어린아이의 방식과 같은 방식은 아니더라도 비물질적인 것을 물질적인 것으로 사유하고 취급하는 것은 인간의 사고방식과 존재방식이 지닌 운명적 속성이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문화자본이나 상징자본 같은 개념도 이와 관련이 있다.

자본이란 재화와 용역의 생산에 사용되는 자산을 말한다. 장사나 사업 따위의 밑천이 되는 돈을 먼저 연상하게 되는데, 부르디외는 이를 경제자본이라고 불렀다. 그는 이것 말고도 가정과 학교에서 얻는 문화적 능력과 교육으로 구성된 문화자본, 사회관계와 연고 등으로 이뤄진 사회자본, 이런 자본들에 의해 얻은 사회적 신용이나 인정을 의미하는 상징자본이 있다고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만큼 큰 힘을 발휘하는 게 어디 있을까. 그런데 부르디외의 구분에 따르면 이 물신적 사회를 움직이는 자본 가운데 물질적인 것은 일부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다 비물질적인 것이란다.

이것들의 역할과 힘은 ‘신정아 사건’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그가 젊은 나이에 그토록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경제자본의 힘보다는 허위일망정 예일대 박사라는 문화자본, 변양균 전 실장을 정점으로 한 사회자본, 그리고 그것들로 인해 얻게 된 상징자본의 힘 덕분이었다. 문제는 이런 자본들 역시 경제자본만큼 얻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나의 선택에 의하지 않은, 내가 어떤 집안에서 태어났느냐와 같은 탄생 조건이 문화자본이나 사회자본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어쩌면 순수하게 돈이 전부인 세상이 오히려 덜 불평등한 세상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악조건 속에서 큰 성공을 거두는 사람은 어디나 있고, 또 불리한 조건에서도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어디나 있다. 그런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생각주머니’가 큰 사람들이다. 부르디외 식으로 말하자면 ‘생각자본’이 큰 사람들이다. 생각도 자본인가? 문화자본이 있고 상징자본이 있다면 생각자본이라고 왜 있을 수 없겠는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있듯 생각자본의 크기에 따라 인생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돈이나 학위, 사회관계에 달린 게 아니라 마음먹기에 달렸다. 물론 삶을 향해 항상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시선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자본을 키우면 결국 나의 삶과 사회, 세상이 변한다. 한국 경제가 세계 경제사에 길이 남을 고도성장을 이룩한 것, 한국 민주주의가 아시아에서 가장 모범적인 민주주의로 우뚝 선 것은 경제자본이나 문화자본 따위가 풍족해서가 아니었다. 생각자본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 그것은 생각주머니, 생각자본이다.

이주헌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