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팡질팡 2월 9일 국회] FTA 비준 연기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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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이어 국회의 한.칠레 FTA 비준동의안 처리가 또다시 무산됨에 따라 국제무대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간 것은 물론 다른 나라와 추진 중인 후속 FTA 협상에도 먹구름이 드리우게 됐다.

세계는 이미 경제 블록화의 흐름 속에 함께 국익을 나눌 경제동맹 '짝짓기'에 한창인데도 우리는 우루과이 라운드 시절의 '개방 망국론'에서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정부 간에 합의해 놓고도 국회에서 비준받지 못한 첫 FTA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도 세우게 됐다.

◇우리 시장 과연 지켰나=1백48개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 중 FTA를 하나도 체결하지 않은 나라는 우리나라와 몽골뿐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 체결된 FTA는 1백84개에 이르고, FTA 체결국 간 무역 규모는 2002년 세계 교역의 43%를 차지할 정도로 커졌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우리나라는 '국내 시장을 절대로 열 수 없다'는 일부 '농촌당' 의원들의 주장에 밀려 국제 통상무대에서 외톨이로 남게 됐다.

한.칠레 FTA는 쌀.사과.배 등 우리 농민들에게 피해가 우려되는 핵심 품목은 아예 개방 대상에서 빠져 '반쪽짜리' FTA가 아니냐는 비아냥을 들어왔는데 이제는 그마저 수용하지 못하는 경직된 나라라는 비난까지 덮어쓰게 됐다.

우리 농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고 농민 인구는 전체 인구의 5%다. 이제라도 냉정하게 국익을 위해 무엇이 최선인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경쟁력 없는 국산 농산물을 비싸게 살 것을 소비자들에게 강요하기보다 국적에 관계없이 값싼 물건을 쉽게 살 수 있는 소비자의 권리도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할 때라는 주장이다.

◇앞으로 어떻게 되나=국회는 다음주 초께 19일 본회의로 표결을 연기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다가온 총선 등으로 비준이 사실상 물 건너간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미 칠레는 지난달 22일 한.칠레 FTA를 최종 비준하고 우리 국회의 비준안 통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일시 귀국한 신장범 주칠레 대사는 비준안 통과가 무산되자 "칠레 정부에 뭐라 설명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일단 이달 내에 국회에서 비준안이 통과되면 오는 4월께 한.칠레 FTA 협정을 발효시킨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그러나 이달 내에 비준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협정 발효는 순차적으로 늦어져 우리 경제에도 작지 않은 타격이 예상된다.

KOTRA에 따르면 이미 지난해부터 한국산 자동차와 휴대전화의 칠레시장 점유율은 각각 18.8%와 9.5%로 2002년(20.5%, 13.4%)보다 크게 떨어졌다. 칠레와 FTA를 맺어 무관세로 들어오는 유럽.브라질.아르헨티나산 제품에 우리나라 제품이 밀려나고 있다는 얘기다.

FTA에 대비한 농민 지원도 당분간 어려워질 전망이다. 당초 정부는 비준을 전제로 농민들이 농협에서 빌려 쓴 영농자금(상호금융)의 상환금리를 인하하고, 신규 정책자금 대출금리도 낮출 계획이었다.

국제사회의 평가는 더욱 부정적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 국제적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지난달 말 발표한 한국 보고서에서 한.칠레 FTA의 체결 지연을 두고 "국회가 정부의 법안 처리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국가신용도에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병기.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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