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랑>자장면과 그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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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어느 날 밤 화실에서 일을 하다 자장면 한그릇을 시켰는데 달랑 이천원짜리 자장면 한그릇을 들고 밤길을 온 청년에게 참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미안하긴요.장사인걸요.』 『그래도 한밤중인데.』 그랬더니 그가 불쑥 하는 말이 『정 그러시면 저기 저 그림이나 하나주세요』였다.
나는 조금 당황해 『그림을 좋아하나』하고 애매하게 웃고 말았다. 며칠후 이번에는 점심에 그 청년이 다시 배달을 왔다.마침후배가 함께 있었다.청년은 음식을 내려 놓고나서 『아씨(아저씨),그림 언제 주실거예요』했다.『무슨 그림?』하고 내가 정색을하며 물었더니『딴청 피우지 마세요.저거 주시기로 했잖아요.』 닭두마리가 서로 노려 보고 있는 30호쯤되는 먹그림으로 외국 어느 미술관에 가 있는 연작중의 하나였다.어리둥절한 후배가 청년에게 물었다.
『저걸 그냥 달라고.저게 얼마짜린줄 알기나 하나.』 후배가 정색을 하고 묻자 그는 『얼마게요』하고 빤히 우릴 쳐다보았다.
『수백만원짜리야.』후배가 말하자 그는 피식 웃었다.
『그만한 돈을 주고 사는 사람이 있어요?』 그의 물음에 후배가 『그럼』하고 대답하자 청년은 씹어뱉듯 말했다.
『미 친 것들.』 나는 깜짝 놀라 그 청년을 바라보았다.
『누구…,나…말인가.』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다들 말예요.웃기는 짬뽕들이야.생각해 봐요.저 시커먼게 진짜 닭이라 해도 몇푼 가겠어요.
종이에 찍찍 그린걸 가지고….가만 저거 오골계예요?』 후배와나는 폭소를 터뜨렸고 청년은 머쓱해져서 「슬리퍼」를 찍찍 끌고가버렸다.나는 그가 함부로 툭툭 말을 내뱉고 사라져버린 다음 불의의 일격을 맞은 것처럼 얼얼했다.올여름 그는 살인적 무더위속을 쉴틈도 없이 배달다녔을 것이다.나 는 분명 「미술동네」에살지만 「뼈를 깎는 고뇌」 어쩌고 하면서 숨막힐 정도의 그림값을 부르는 사람들(비록 극소수라 할지라도)보다는 결단코 그 청년의 편을 들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러고 보면 나야말로 돼먹지 않았다.닭두마리 그려놓고 무슨 몇백만원이라는 말인가.
혹 오골계라면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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