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機 야간 도심 저공비행-김용일 특파원 아이티 현지취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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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의 최후통첩이 나온 이후 16일 포르토프랭스에는 조만간 시작될 미국의 침공에 대한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으며 수천명의 주민들이 수도를 떠나는등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이날 아이티의 주요 지방을 연결하는 버스 노선에는 정류장마다피난 떠나는 사람들로 인해(人海)를 이뤘다고 현지 소식통들은 전했다. 아이티 국민들은 현재 2만명의 미군들이 침공해 자신들의 조국에 수많은 포탄을 퍼부을 것에 대한 공포와 함께 이들 다국적군의 침공이 아이티 군부의 對국민 테러를 다시 촉발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15일 오후9시(이하 현지시간)클린턴 美대통령의 최후 통첩성경고가 있은 뒤부터 포르토프랭스 시내에는 군의 이동이 잦아지고경계가 강화되는등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16일 오전8시가 조금 넘어서면서부터 아이티의 대통령궁이 자리잡고 있는 시내중심부 삼디마스가 일대에는 4백여명으로 추산되는 군병력이 완전무장 한채 무력시위를 벌였다.
군트럭에 분승한 이들은 M16,M1및 아카보소총등 갖가지 종류의 개인화기로 무장한 채 구호를 외치며 대통령궁 일대를 순찰하기도 했다.
또 대통령궁과 50여m쯤 떨어진 군사령부 외곽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소집된 민병들이 현역병 지휘아래 신원파악등 소집절차를 마친뒤 사령부내로 인솔되어 들어갔다.
거리 곳곳마다 미군의 개입을 반대한다는 플래카드가 나붙어 있으며 서울로 치면 명동이라 할 수 있는 데살린가 일대 상점에는이날 오전부터 전에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밀가루.쌀.옥수수가루.설탕과 같은 비상식량들을 사재기하는 모 습도 보였다.
기자가 묵고 있던 대통령궁 근처의 홀리데이인 호텔은 자체 발전기를 가동,정전이 되는 일이 없음에도 등화관제를 감안한듯 이날 오후부터 방마다 손전등을 지급했다.
또 미군이 작전을 개시할 경우 우선적으로 통신시설을 파괴할 것으로 추정됨에 따라 사람들은 일단 침공이 개시되면 최소한 3일 정도는 모든 통신이 불통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미군의 침공시 첫째 타격목표로 알려지고 있는 대통령궁앞 군 사령부내에는장갑차 1대와 중기관총좌 2개소가 설치돼 경계를 펴는 모습이었다. 군사령부와 방송국.관공서등이 긴장감을 보이고 있는 반면 빈민가및 거리등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일반 서민들은 여전히 무기력한 모습이며 시내외곽인 페총빌 지역 고지대의 고급주택가는 문을 잠근 채 인적이 뜸한 상태였다.
특히 과거의 정변때등을 예로 들어 주민들은 미군침공시 경찰력이 거의 미치지 않는 빈민가및 일반서민 주택가에는 린치등 폭력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며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15일 오후11시 쯤에는 미군 항공기가 시내 일대를 저공비행하며 무언가를 투하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미군의 공격이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하는 소문이 퍼졌으나 공중투하된 화물을 수거해본 결과 연안에 있는 미군함정에서 방송하는 선전.선무 용 방송을 수신할 수 있는 라디오들로 밝혀져 미군의 진입이 말 그대로 눈앞에 다가와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포르토프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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