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시급한 腦死.장기이식 지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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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세상에는 신문에 보도된 일만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니다.이런일도 있었다.어느 부부가 결혼한지 오래인데도 아이가 없었다.의사의 진단에 의하면 여자에게는 불임(不姙)원인이 전혀 없고 남자에게 고장이 있다는 것이었다.그들은 아무래도 아이를 갖고 싶었다.그들은 의사와 상의한 결과 제3자로부터 기증된 정액을 가지고 임신하기로 했다.이렇게 해서 원하던 아이를 갖게 되었고 그들의 아이로 호적에 등재도 했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지난 86년에 발표된 어느글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는 한해에 약 2백명의 새 생명이 인공적(人工的)인 임신에 의해 태어나는데 그 중에서 20%정도는 이러한「기증자의 정액으로 하는 인공임신」이라고 한다.그 후에 이 숫자가 줄어들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 후에 이 부부는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사이가 돌이킬 수 없이 나빠져 이혼(離婚)을 했다.문제는 남자가 이제 더 이상 그 아이를 자신의 아이로 여기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그는 그 아이가 자신과의 사이에 친생자( 親生子)관계가 없음을 확인해 달라는 소송을 법원에 제기했다.이러한 일은 우리로 하여금 병원,그리고 그 주위에서 행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다시금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장기이식(臟器移植)을 예로 들어보자.우리나라에서 간(肝)이식은 88년3월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처음으로 행해졌다.이 일은 신문에 현대의술의「개가」로 대서특필되었다.최근에 사고로 뇌사(腦死)상태에 빠진 어느 탤런트의 간과 기타 장기를 적출해 여러 사람에게 성공적으로 이식했다고 하고,그 전에도 간간이 그러한 일이 보도되었던 것을 보면 88년 이후로도 이러한 장기이식은 계속 행해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눈부시게 발달한 현대의학을 적용해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보전하는 것에 대해 이의(異議)를 달 이유는 없다.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는 단지 종전에는 치료할 수 없던 병을 새로운 의학에 의해「정복」한 것이라고 밀어버릴 수 있을만큼 문제 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간이식수술을 하려면 다른 사람의 몸으로부터 간을적출(摘出)해야 한다.그리고 간이 없으면 사람은 생존할 수 없다.그러니까 간은 가령 신장과는 달리 산 사람으로부터 산 사람에게 이식될 수는 없다.산 사람으로부 터 간을 떼어내는 것은 결국 살인(殺人)행위가 된다.그래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 관한 논의가 주로 장기이식과 관련해 행해지는 것이다.腦死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뇌사를 죽음으로 인정할 것인가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숙고(熟考)가 필요하며 ,장기이식의 필요라는 한 가지로 단숨에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비록 인공적인 장치에 맡겨져 있고,아무런 의식도 없고 의식을 되찾을 가능성조차 없 으며,또 머지않아 심장도 결국은 멎을 것이라고 해도 아직은 심장이 쿵쿵 뛰고 있고 안아보면 체온이 따스한 자식을『이미 죽었다』고 밀어붙여도 좋을까.
도대체 뇌사란 무엇인가.외국에서는 이에 대한 기준이 대체로 마련돼 있고 또 어느 정도는 일치된 기본선(基本線)이 있다고는해도 나라마다 또는 기관마다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누가 어떠한 절차에 의해 이것을 판정할 것인가.
또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무엇을 죽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물론의학계에서는 전부터「腦死판정기준」이라는 것을 마련해 이에 따르고 있다고 한다.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의학계 내부의 일이고 이를 지켰다고 해서 사회적.법적으 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아니다. 한편 장기이식도 나름대로 먼저 해결돼야 할 문제들이 많다.장기를 대가를 받고 넘기는 것은 허용되는가,또는 어떠한 범위에서 허용되는가.뇌사상태에 있는 사람의 몸으로부터 장기를 떼어내는 경우에 누구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가.유족(遺族) 들 사이에 의견이 갈리면 어떻게 할 것인가.뇌사상태에 빠지기 전에본인이 동의를 했다고 해도 후에 유족들이 반대할 경우에는 어떠한가.또 중요한 것은 장기를 이식받을 사람을 누가 어떠한 절차에 의해 어떠한 기준으로 정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외국의 어느학자는 간과 같이 극도로 희소한 자원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는「비극적 선택(悲劇的選擇)」이라고 했다.거기서 분배받지 못하는다수의 사람에게 그것은 결국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인공임신.뇌사.장기이식등과 같이 어려운 문제들,여러사람의 이해(利害)가 상충되는 문제들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정부의 중요한 책무(責務)다.그동안 보사부나 법무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맹성(猛省)할 일이다 .
〈서울대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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