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가 '연정 무산 쓰나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일본 제1야당인 민주당의 오자와 대표가 4일 사임을 전격 발표한 뒤 도쿄 당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도쿄 AP=연합뉴스]

일요일인 4일 오후 일본 정가에는 제1야당인 민주당의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대표가 대표직을 전격 사퇴하는 대격랑이 몰아쳤다. 오자와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와의 대표회담에서 자민당과 민주당의 '대연립'을 추진하기로 했으나 당내 반발로 무산됐다"며 "나에 대한 불신임으로 간주하고 사임한다"고 말했다.

오자와는 지난달 30일과 이달 2일 두 차례 후쿠다 총리와 회담하면서 집권당인 자위대의 해외 파병과 관련해 자신의 정책을 관철하고 대신 자민당과 민주당이 연립정권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연정안은 2일 밤 민주당 간부회의에서 부결됐다.

◆연정, 제안자는 누구=연정을 누가 먼저 제안했는지는 말이 엇갈린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4일 "오자와 대표가 '민주당 내부 설득을 위해 후쿠다 총리가 먼저 연정을 제안한 것으로 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오자와는 이날 이를 부인하고 "후쿠다 총리가 신테러특별조치법안의 처리를 놓고 민주당의 협력을 구하는 과정에서 대연정을 전격 제의했다"고 말했다.

후쿠다 총리가 2일 회담에서 유엔의 결의가 있는 활동에 대해서만 자위대를 파견할 수 있게 하자는 오자와의 지론에 전적으로 찬성하면서 '만일 민주당이 자민당과 연립을 하면 신테러특별조치법안에도 집착하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이룰 수 있다면 정책 협의를 위한 연정을 구성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게 오자와의 주장이다.

두 사람만의 밀실회담이었기 때문에 진실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연정을 먼저 제안한 게 후쿠다가 아니라 오자와라는 이야기가 새어 나온 것이 오자와 사퇴의 한 원인이 된 것은 분명하다.

아무튼 오자와는 총수회담에서 연정안을 받아들였지만 당에서 "정권 교체를 외친 지가 언제인데, 받아들일 명분이 없다" "즉석에서 거부했어야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오자와는 "연립을 하면 지난 참의원 선거에서 공약했던 정책들을 실현할 수 있으며, 민주당이 정권 운영 능력을 보여야 다음 중의원 선거에서 정권 교체를 이룰 수 있다"고 설득했으나 소용없었다. 협력 관계인 사민당.국민신당 등 다른 야당도 오자와를 공격했다. 7월 참의원 선거에서 과반수를 차지하며 기세등등하던 오자와는 연정을 엿본 '밀담'의 여파 한 방으로 '총리'의 꿈을 일단 접게 됐다.

◆오자와는 왜 '연립정권 지뢰' 밟았나=오자와는 4일 "'자민당은 싫지만 그렇다고 민주당에 맡길 수 없다'는 여론이 팽배해 중의원 선거에서 이기기 힘들다고 판단했다"며 "이를 불식하기 위해서도 연정을 통해 민주당의 수권 능력을 보이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조기 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에서 '선거를 통하지 않은 연립정권'으로 사실상 방향을 틀었다는 것이다.

자민당과 공명당의 현 연정의 틀을 깨기 위해 섣불리 새 연정을 구상했다가 본인이 그 함정에 걸려들었다는 분석도 있다. 조직표가 강한 공명당을 자민당으로부터 떼어 놓고, 그 다음에 자민당과 결별한 뒤 선거에 나서려 했으나, 연정에 대한 당내 거부감을 과소평가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자민당으로선 대연정에 뜻이 있던 오자와를 교묘하게 유인, 당초 목표인 '대연정'은 이뤄 내지 못했지만 오자와의 대표 사퇴라는 '차선의 소득'은 얻은 셈이다.

일각에선 "애당초 '오자와 실각'을 노린 여권의 고도 전술이었다"는 말도 나온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오자와의 정치 경력

▶1969년 첫 당선(현재 13선) ▶85년 12월 자치상 취임 ▶89년 8월 자민당 간사장 ▶93년 6월 신생당 대표간사 ▶2006년 4월 민주당 대표 ▶2007년 7월 참의원에서 압승하며 야당의 과반수 의석 확보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