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돋보기] "음주사고라도 고의성 없으면 보험금 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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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2004년 4월 광주광역시에서 음식 재료를 배달하던 화물차 운전자 이모(42)씨는 만취 상태에서 운전을 하다 음주단속에 적발됐다. 과거 음주운전 경력이 있던 이씨는 "면허가 취소되니 한 번만 봐 달라"며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그는 음주측정에 불응하다 차를 몰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를 단속하던 의무경찰 조모(24)씨가 운전석 문을 붙잡고 매달렸다. 이씨는 조씨를 매단 채 시속 70㎞까지 속도를 내며 차를 몰았다. 400m가량 이동했을 때 조씨는 힘이 빠져 차에서 떨어졌다. 조씨는 차 뒷바퀴에 다리가 깔렸고, 부근에 놓여 있던 철제 빔에 머리를 부딪쳐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이씨는 현장에서 붙잡혔다. 음주측정 결과 혈중 알코올 농도는 0.147%가 나왔다.이씨는 징역 4년이 확정됐다.

이후 이씨는 조씨가 입은 손해를 배상하기 위해 아내가 계약해 둔 S화재보험에 보험금 지급을 요청했다.

하지만 S화재 측은 "보험계약자의 고의로 인한 손해"라며 이씨를 상대로 보험금 지급 책임이 없다는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을 냈다. 1, 2심 법원은 보험사의 손을 들어줬다. "단속 의경이 다친다는 점을 운전자가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으므로 고의 또는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2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보험금을 지급하라"며 원고 패소 취지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광주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고 4일 밝혔다. 재판부는 "운전자가 단속 의경이 식물인간이 될 정도로 중대한 결과에 이르리라는 점까지 예견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씨의 고의로 인한 손해라고 볼 수 없으므로 보험사의 면책 약관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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