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수 청바지 수만벌 분실·부패 국가 배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압수 물품을 제대로 보관하지 않아 돌려주지 못한 수사기관에 대해 배상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압수 물건을 함부로 다루고 있는 수사기관에 비상이 걸릴 판결이다.

서울경찰청은 1999년 7월 서울 성동구 소재 모 청바지업체가 다른 업체의 상표를 도용했다는 고소에 따라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 과정에서 경찰은 이 회사 의류창고.공장에서 6만7천여벌의 청바지를 압수했다. 그러나 압수한 물건을 국가가 운영하는 창고에서 보관하지 않고 사장 유모씨를 고소한 경쟁업체 사장 전모씨에게 맡겼다. 이후 서울지검은 상표법 위반 혐의로 유씨를 기소했지만 그는 2001년 9월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에 따라 그는 수사기관에 압수 물건을 돌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함부로 보관하면서 분실.폐기돼 3만5천여벌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나마 2천여벌은 물에 젖어 썩고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서울고법 민사12부(재판장 李宙興부장판사)는 8일 유씨가 "압수물을 돌려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청바지 3만2천여벌을 돌려주거나 그것이 불가능하면 한벌에 3천원씩 9천8백여만원을 주라"고 판결했다. 또 "못 쓰게 된 청바지 2천여벌에 대해서도 6백여만원을 배상하라"고 덧붙였다. 1심에서는 "없어진 청바지 숫자가 입증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국가 책임이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형사사건에서 무죄가 확정되면 압수도 풀리는 것"이라면서 "압수 책임자가 보관 의무를 소홀히 해 재산권을 침해했다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현경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