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너무도 비과학적인 과학계 성차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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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두뇌는 평등하다
원제 The Mind Has No Sex?
론다 쉬빈저 지음,
조성숙 옮김,
서해문집,
456쪽, 1만4500원

“다시에 부인처럼 머릿속에 그리스어가 가득하거나 샤틀레 후작 부인처럼 복잡한 수식을 토론하는 데 열중하는 여성은 수염을 기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래야 자신들이 그토록 열심히 심오한 지식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분명해질 것이다”(202쪽)

여성이 교육받는 것은 자연법칙에 어긋나는 일이며 과학에는 ‘남성만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반영하는 이 말은 무지렁이가 한 것이 아니다. 18세기 후반 독일 철학자 칸트의 말이다. 위대한 인간 존중 사상이 담긴 정언명령을 이야기한 그도 시대의 벽은 뛰어넘지 못했던 것이다.

미국 스탠퍼드 대 과학사 교수인 지은이는 이 같은 사실을 열거해 가며 17~18세기 유럽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왜 과학계에서 배제되었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16세기까지는 유럽여성들의 배움은, 특히 상류층 여성들의 경우 비교적 자유로웠다. 많은 여성들이 당시 학문의 중심이었던 수녀원에서 교양을 쌓을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대학과 아카데미가 생기면서 여성들은 배움의 중심지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영국 자연철학자 마거릿 캐번디시 공작부인은 21권의 저서를 냈지만 아카데미의 실험을 참관하는 데 그쳤다. 뉴턴의 저서를 처음 프랑스 어로 옮긴 물리학자 에밀리 뒤 샤틀레 부인은 스승의 저술을 베꼈다는 누명에 시달려야 했다. 이 모두 남성 위주의 교육제도와 여성을 가정에 묶어 두려는 정치적 의도 탓이었다.

심지어는 산파술처럼 여성이 다른 여성을 위해 개발하고 사용한 기술도 남성들이 차지했다. 17세기까지 여성들이 출산 분야를 독점했다. 그러나 18세기 들어 의학이 독립적 지위를 차지하고(이발사와 단절했다) 외과의사협회를 만들거나 외과대학이 세워지면서 여성산파들은 전문직 남성들에게 자리를 내줘야 했다. 교육받은 의사들은 해부학에 힘입은 새로운 기술이나 기법을 여성산파들과 공유하지 않았기에 시간이 흐르면서 남성 산파가 더 유능하다는 인식이 퍼진 때문이었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대학에 다니거나 대학을 세울 수 없어 신기술 습득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처지에 놓인 여성 산파들은 이렇게 해서 도태되었다.

그러니 샤틀레 부인이 “내가 왕이 된다면, 인류의 절반을 봉인하는 악습을 뜯어 고치겠다. 나는 여성도 인간의 모든 권리를, 무엇보다 배움의 권리를 누리게 할 것이다”라고 절규한 것이 이해가 간다.

‘여성은 불완전한 남성’ 또는 ‘여성의 두뇌는 발달이 덜 된 아동 수준’이라는 등의 남성우위론을 뒷받침한 ‘자연과학’은 지금 보면 우스꽝스럽다. 하지만 1673년 프랑스 수사 폴랭 드 라베르가 “정신에는 성별이 없다”고 선언한 뒤에도 노벨상을 두 번이나 탄 마리 퀴리가 1911년 프랑스 왕립 과학아카데미에 입회하지 못했던 사실을 접하면 참담해진다.

이 책의 설명 자체는 주제에 따라 오가느라 약간은 난삽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다양하고 진귀한 자료를 통해 잃어버린 혹은 잊고 있던 역사를 복원했다는 점에서 과학사로도, 여성사로도 흥미롭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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