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지리학의 힘!… 미 외교관 필독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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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분노의 지리학
하름 데 블레이 지음,
유나영 옮김,
천지인,
448쪽, 2만원

지도는 힘을 품고 있다고 한다. 흘러간 전성기의 드넓은 영토를 표시한 지도, 이웃나라가 자기 땅이라고 하는 곳을 내 나라 국경 안에 넣은 지도, 쳐부숴야 할 적들이 진을 치고 있는 지역을 가리킨 지도…. 자부심 또는 분노가 반영된 지도들이다. 갈등을 자극하는 ‘힘’을 지닌 셈이다.

이 책은 지도의 힘, 지리학의 힘을 강조한다. 기후 변화, 중국과 이슬람의 부상, 인종과 종교 분쟁, 테러 등 주요 국제 현안을 지리학의 관점에서 설명하려 한다. 같은 현상도 지리학자가 보면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노력이 역력하다. 예컨대 이슬람의 분포 지역을 세계지도에 굵은 선으로 긋거나, 몇 개 문명권의 경계를 표시함으로써 국제적 사건들의 흐름을 큰 틀에서 정리해준다. 대체로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과 같은 노선을 따른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협회의 평생 명예회원인 지은이는 지리적 교양이 미국의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고 강조한다. 이어 미국에선 국민은 물론 관료도 지리학 지식이 심하다 싶을 정도로 모자라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자기 책을 읽고 공부 좀 하란다. 이게 먹혔는지 미국 국무부는 이 책을 해외 근무 나가는 신입 직원과 외교관의 필독서로 정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지은이의 시각이 어디로 기울어 있는지 짐작하고도 남을 터다.

지은이는 특히 이슬람 세력을 미국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간주한다. 그 연장선에서 이슬람은 교리 자체가 폭력적이라고도 주장한다. 지리학자는 종교 교리에 대해선 아마추어일텐데도 반 이슬람 율법 강의에 적잖은 지면을 할애한다. 독자들이 알아서 걸러야 할 부분이다.

또 다른 문제는 책의 성격이다. 정치·역사·종교에 대한 설명이 지리학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명쾌하지가 않다. 게다가 신문이나 역사책을 들춰보면 다 나오는 내용들이다. 이게 무슨 지리학 책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지리학 본류에 해당하는 부분은 ‘지도를 읽고 위협에 대처하는 법’을 다룬 제 2장 정도다. 출판사 편집자도 이를 고민해 ‘공간으로 읽는 21세기 세계사’라는 부제를 달았다고 한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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