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하라, 중국 현대미술은 강력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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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중국 베이징 따샨즈 798 예술지구 중심부에서 ‘울렌스 현대미술센터’가 5일 문을 연다. 설립자인 울렌스씨가 개관 준비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세계의 유명 미술관과 화랑이 중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 센터는 2010년까지 상하이 분점을 낼 계획이고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베이징 진출을 위해 부지를 물색 중이다. 5일에는 중국내 최대 규모의 현대미술 센터가 베이징에서 문을 연다. 벨기에 출신의 세계적인 중국 미술 컬렉터 가이 울렌스(72)가 만든 ‘울렌스 현대미술센터’다. 개관을 앞두고 그를 만나 컬렉션 과정과 센터 운영계획을 들었다.

 “지난 20년간 중국을 160회 방문했지요. 이제는 꿈을 이뤘습니다”.

 벨기에 출신의 세계적인 중국미술 컬렉터 가이 울렌스(72)는 활기에 차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딴 현대미술센터의 개관(5일)을 앞두고 있는 그를 지난달 28일 베이징에서 만났다. 그는 중국 미술을 서방세계에 알리는 첨병이자 대부로 꼽힌다.

 -센터를 개설한 배경은.

울렌스 현대미술센터 내부 조감도.

“우리(※그는 부인 미리엄과 함께 울렌스&미리엄 재단을 설립했다. ‘91년 재혼했다’고 밝힌 그는 인터뷰 내내 ‘우리’라는 주어를 썼다)는 그동안 중국 현대미술을 유럽에 알리는 데 주력해왔다. 그런데 좀 더 전문적으로 하려면 거대 규모의 설치미술도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너무 커서 유럽으로 가져갈 수가 없다. 그래서 이렇게 커다란 공장지대를 선택했다. 소장품이 늘어나고 중국 정부가 현대미술을 관용적으로 대하는 것을 보면서 센터 설립 계획은 구체화됐다. 베이징은 세계 미술의 중심으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어 센터를 열기에 최적의 장소다.”

 -어떤 방식으로 운영할 것인가.

 “세계의 현대미술을 보여주되 특히 상업지향적이지 않은 중국 작가를 우대할 것이다. 작가 선정은 예술관장을 맡은 평론가 페이다웨이가 자율적으로 한다. 내년 올림픽 기간(8월 8일~24일)에 맞춰 재단 소장품전도 연다. 센터는 상업공간으로 등록했다. 미술관은 정부의 규제를 많이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철저히 비영리 공간, 사실상의 뮤지엄으로 운영할 것이다.”

 -사회주의 중국에서 대규모 센터를 만드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중국은 너무나 효율적이다. 스위스와 비교된다. 과거 어떤 음악 축제에 관여했던 일이 생각난다. 커다란 홀을 하나 만들기로 했는데 완공에 10년이 걸렸다. 우리 센터는 10개월만에 완료됐다. 중국 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지적이고 문화적인 영역에서 세계 어느 곳과도 경쟁할 수 있는 도시를 중국 정부는 갖추고 싶어 한다.“

 -센터에선 뭐든지 전시할 수 있나.

 “중국에서는 직접적인 정치 비판이나 끔찍한 폭력 그리고 노골적인 성표현을 담은 작품은 전시할 수 없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가.

 “마오쩌뚱이나 천안문 사태를 다룬 것을 몇 점 갖고 있다. 중국인들이 천안문 사태를 보는 시각을 스스로 결정할 때까지는 유럽 어딘가에 보관해 둘 것이다. 그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태도다.”

 -애장하던 윌리엄 터너의 수채화를 소더비에서 판매한 소감은 ?

 “엄청난 상실감을 느꼈다. 하지만 다시 세상에 내주는 게 컬렉터의 운명이다. 게다가 나는 세계 최고의 부자는 아니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만 했다. 경매 덕분에 현재의 미술센터를 만들 수 있었다. 나는 72세다. 모든 것을 가지고 갈 수는 없다.”

 -센터 건립비는 얼마나 들었나?

 “모른다. 아직도 돈 들 곳이 많다. (페이다웨이는 지금까지 1억위안, 약 130억원이 들었다고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중국 현대미술을 수집 한 이유는.

 “식품 사업을 확장하느라 1980년대과 90년대 초반에 걸쳐 중국에서 한 6년간 살다시피했다. 당시는 개혁 개방의 여파로 젊은 작가들이 막 나오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들은 공산당의 선전작품을 만들도록 높은 수준의 서양식 미술 교육과 훈련을 받았다. 그런데 갑자기 자유가 주어졌던 것이다. 이들은 헌신적이고 전문적으로 작업을 했다. 상업적 의도는 전혀 없는 순수한 작품이었다. 그것이 80년대 중반 중국 미술의 뉴웨이브 운동이고 이번 센터 개막전의 주제다. 나는 거기서 서양의 르네상스 시기를 보는 것과 같은 감동을 받았다.”

-중국 미술의 어떤 점이 그렇게 당신을 흥분하게 만드는가.

 “80년대 당시 중국 미술은 우리의 삶이었다(We lived it). 우리는 작가들을 안다. 주말을 함께 했다. 젊은 작가들과 피크닉도 가고 작업실도 방문했다. 내 삶의 황금기, 가장 아름다운 시간 중의 하나였다. 그것은 정말 우리 생활의 일부였다. 그건 화랑으로가서 ‘제프 쿤스 최신작 나온 것 있느냐?’고 묻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당시 작품 가격은 얼마 정도였나.

 “그들은 무명이었고 한 점에 5000달러(약 450만원)를 주면 엄청난 거금으로 생각했다. 지금은 시장에서 100만~200만달러에 팔리고 있는 작가들이다.”

 - 중국 현대미술품 값이 폭등하고 있다.

 “컬렉터 입장에서 슬픈 일이다. 그러나 한가지는 말할 수 있다. 2000년까지는 작품을 대량으로 만드는 작가는 전혀 없었다. 다들 순수했고 시간을 많이 들여서 수준높게 작업했다. 일년에 10점도 못만드는 작가도 많았다. 그래서 이 시기의 작품은 구하기가 어렵고 가격도 엄청나게 비싸다. 그래서 요즘은 젊은 작가를 (작품을 구매해서)지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없는 핵심적 작품이 나오면 비싸도 사는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일전에 핵심적 작품 하나를 천정부지로 솟은 가격에 사야했다. 원래 3부 연작이었는데 두 점은 우리가 가지고 있었다. 또 하나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시장에 나왔다.”
 -그게 누구 작품이었나?

 “장샤오강이다. 그걸 사는 일은 매우 고통스러웠다. 이제는 시장에 나온 최고 수준의 작품을 일년에 두세점 밖에 살 수 없다. 과거에는 수백점 씩 살 수 있었는데.”

 -그동안 알고 지내던 작가들이 돈을 많이 벌게 되면서 행태가 달라졌는가.

 “그렇다. 과거엔 그렇게 다작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변하고 있다. 일부 작가는 다작을 하면 1000만~1500만 달러를 쉽게 손에 쥘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그들은 이제 모두 재규어 승용차를 몬다.”

 -중국미술을 통해 서방세계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조심하라, 매우 중요한 것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중국의 새로운 세대는 매우 창조적이다. 이들은 독자적이고도 강력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당신은 스위스 제네바 교외에 자택이 있고 이제 베이징에도 커다란 집이 하나 생겼다. 어디로 갈 것인가?

 “우리에겐 커다란 요트(sail boat)가 있다. 그걸 타고 제주로 갈 예정이다. 우리는 한국을 좋아한다.”

베이징 글·사진=조현욱 기자


왼쪽부터 기자와 울렌스 부부.

가이 울렌스는 …

벨기에 식품그룹 출신
중국미술 세계에 전파

 가이 울렌스는 벨기에에 기반을 둔 식품 그룹 출신의 남작(baron). 현재 스위스 제네바 교외에 살고 있다. 1985년 ARTAL 그룹을 창설하고 99년 미국의 다이어트 식품그룹 ‘웨이트워처스’를 인수했으나 2000년에 은퇴했다. 그에 앞서 1990년 집안의 금융자산을 8억200만파운드(약 1조5000억원)에 판매하는 수완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아버지가 외교관으로 중국에 근무했으며 삼촌은 주중 벨기에 대사를 지냈다. 프랑스의 자크 시락 대통령, 영국의 찰스 왕세자, 벨기에 왕족들을 친구로 두고 있다. 그는 지난 7월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윌리엄 터너의 수채화 12점을 1000만 파운드(약 187억원)에 팔았다. 울렌스 센터 건립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무도 중국 현대미술에 관심을 갖지 않던 1987년부터 수집을 시작, 1500여점을 모았다. 중국 현대미술 관련 세계 최대의 개인소장가로 꼽힌다. 현대미술의 경우 80년대 이래 모든 경향을 통괄하며 분야도 회화, 조각, 비디오, 사진, 설치 등을 모두 아우른다. 2002년 스위스에서 부인과 함께 가이&미리엄 울렌스 재단을 설립, 중국 미술을 세계에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재단은 2003,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중국 프로젝트를 후원했으며 2002년 프랑스 파리, 2004년 벨기에 안트워프 등지에서 대형 기획전을 열었다.

 ◆울렌스 현대미술센터=베이징 따샨즈 798 예술구의 중심가에 5일 개관한다. 군수공장 건물들 여러 동을 개조해 8000 ㎡ 규모의 종합 센터를 만들었다. 내부 설계는 프랑스의 유명건축가 장-미셀 윌모트가 맡았다. 전시장은 테이트 모던과 같은 백색의 중립적 공간이 특징이다. 전시장 3곳, 강당, 회의실, 카페,식당,자료실, 아트샵 등을 갖췄다. 예술관장은 프랑스에서 10여 년간 활동한 평론가 페이다웨이(53). 개막전으로 중국 현대미술의 태동기인 1985년의 신조류 운동을 조명했다. 작가 30명의 회화, 사진, 비디오와 설치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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