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기초의회는 차라리 폐지하는 게 낫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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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대부분의 기초 지방의회가 내년도 기초의원 연봉을 대폭 올렸다. 많은 주민은 경제가 어려워 고달프게 살고 있는데, 지방의원들은 자기 배만 불릴 생각에 골몰하고 있다. 그 돈이 다 어려운 살림살이를 하는 주민들 주머니에서 나오는데도 말이다. 더구나 기초자치단체의 재정 자립도는 형편없이 낮다. 결국 스스로 자립도 못하는 주제에 자기 봉급만 올리는 도둑심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기초의회를 없애자는 말까지 나온다.

 군청의 재정 자립도는 약 12%, 군민의 연간 평균 수입은 1000만원대인 전북 무주군에선 의회가 내년도 의원 연봉을 올해의 두 배 정도인 4200만원으로 인상했다. 내년도 전국 기초의원의 평균 연봉은 올해보다 39% 많은 3842만원이라고 한다. 웬만한 대기업 수준이다. 근로자 평균 임금 인상률은 5%대인데, 어떻게 39%나 올리는가. 이런 사람들이 주민의 대표자들인가.
 지방의원은 당초 무보수 명예직이었지만, 올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의원이 의정 활동에 전념하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유급제가 도입됐다. 반대도 많았지만, 국민은 지방의회의 발전을 위해 양해했다. 그러나 너무나 뻔뻔한 잇속 챙기기는 용납할 수 없다.

 의원의 전문성 향상을 위해서라지만, 그간 활동을 보면 거짓말에 불과하다. 지난해 기초의원 한 명이 발의한 조례는 평균 0.4건이었다고 한다. 조례를 만들지 않은 기초의회도 있었다. 능력과 열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니 이들에겐 ‘유명무실’ ‘무위도식’이란 불명예스러운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반면 허세 부리면서 향응 대접만 받거나, 이권에 개입하는 의원도 많다. 비리·폭력 등으로 형사처벌된 의원들도 잇따른다. 잘 뽑지 못한 주민 책임도 크다. 올해 지방선거에선 사망한 후보가 기초의원에 당선되는 기상천외의 일도 벌어졌다. 가족들이 사망 사실을 모르고 대리로 후보 등록을 했는데, 유권자들은 얼굴도 못 본 채 뽑은 것이다.

 지방자치는 지역 발전에 힘쓸 인재를 주민들이 뽑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그러나 우리는 정당이 지방선거 후보를 공천하니까, 지방선거가 중앙정치의 대리전이 되고 지방자치가 정치에 휘둘린다. 국회의원들의 지방 조직 노릇을 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니 의원들의 상호 견제가 사라지고, 담합해 주민을 무시하는 안하무인격 행동을 하는 것이다. 정당의 개입을 봉쇄해야 한다.

 주민들은 주민소환제를 통해서라도 주민이 무서운 줄 알도록 해야 한다. 행정 전문가 사이에선 우리는 기초지역 간 특성이 크지 않기 때문에 기초의회를 광역의회로 통합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의견이 많다. 이번 기회에 차라리 기초의회는 폐지하고 광역의회도 명예직으로 전환하는 것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