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해외칼럼

남미에 대한 중국의 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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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중국과 라틴아메리카의 관계는 역설적이고 모순적이다. 지난 수년간 양측의 교역이 늘고 외교 관계도 강화돼 왔지만 서로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일부 사안에서는 긴장도 고조되고 있다. 중국과 남미 국가들 간 주요 프로젝트 가운데 민간 차원이나 학술기관에 의해 시작된 것이 거의 없다. 양측의 제도적 교류도 활발한 경제 교류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모순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중국 기업들, 특히 콩·육류·철·구리·석유 등과 같은 원자재 상품 관련 기업들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직접 투자 또는 상품·기업 매입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다. 반면 남미 국가의 주요 기업들이 중국에서 성공적으로 사업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틴아메리카는 여전히 중국의 둘째 경제·무역 파트너로 남아 있다. 2006년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국가들은 중국 수출의 3.7%와 수입의 4.3%를 차지했다. 라틴 아메리카와 주요 국가들에 중국은 10위권 안의 교역국이며 일부 국가에서는 2위 자리를 차지하기도 한다. 심지어 중국과 외교 관계가 없는 몇몇 중앙아메리카 국가 및 카리브해 국가들과 중국의 교역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미국과 유럽 시장으로 대대적으로 진출하고 있는 중국은 이 지역에서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경쟁국들을 밀어내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수입에서 라틴아메리카가 차지하는 비율(약 17%)은 2000년 이후 늘어나지 않고 있다. 남미의 주요 수출국인 아르헨티나·브라질·멕시코 등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오히려 떨어졌다. 반면 중국이 미국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90년 3%에서 2006년 16%로 많이 증가했다.

중국의 사례는 80년대 이후 대부분의 다자 기구가 주창해 왔던 경제정책에 커다란 이데올로기적 도전이 되고 있다. ‘사상적으로 일탈적인’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980년에서 2005년 사이 라틴아메리카보다 17배 이상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학창 시절의 문제 학생이 사회에서 가장 좋은 직업을 얻은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라틴아메리카와는 달리 중국은 경제활동에서 공적 부문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민간 부문도 이윤 통제를 통해 상당 정도 공공화돼 있다. 노동과 상품 시장을 자유화하지도 않고 있고, 환율과 금융부분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중국은 5개년 개발 계획을 세우고 과학·기술을 비롯한 많은 분야에서는 15년이 넘는 장기 계획을 수립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중국은 값싼 노동력과 빠르게 성장하는 기술력을 이용해 라틴아메리카보다 훨씬 뛰어난 수출 경쟁력을 확보했으며, 2000년 이후 의류·전자·가구 시장에서 몇몇 남미 국가들을 밀어냈다. 중국이 향상되는 기술력을 활용한 가공 상품들을 수출하는 반면 남미 국가들은 여전히 부가가치가 낮은 기초 상품들의 수출에 머물고 있다.

중국은 최근 들어 상당한 무역 흑자를 내고 있는 브라질 같은 나라에도 강력한 도전이 되고 있다. 따라서 중국과의 무역전쟁에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을 ‘승자’와 ‘패자’로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브라질·중국 기업가 협의회에 따르면 브라질은 광물과 농산물 수출 확대에도 불구하고 올해 처음으로 중국과의 무역에서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멕시코도 대중무역에서 수년간 적자를 겪어오고 있다. 2006년 멕시코의 대중 수입·수출 비율은 16대 1에 달했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과거 수십 년간의 성장 경험에 대한 철저한 자기 비판을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외교를 넘어서서 중국과의 양자 관계에 더 많은 투자를 하는 실용적 친선관계를 강화할 필요도 있다.

엔리케 두셀 피테르스 멕시코 국립자치대 중국·멕시코 연구센터 연구원

정리=유철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