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에서>결과 지상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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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옛날 어느 어리석은 농부가 자기집 논에 심은 늦벼가 이웃집 논에 심은 올벼처럼 패지 않은 것을 보고 하루종일 땀을 뻘뻘 흘리며 아직 출수하지 않는 벼이삭을 모조리 뽑아올려 농사를 망하게 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다.
세상 일이란 모두 그 되어가는 과정이 다르고 또 결실에 소요되는 시간이 다르게 마련이다.
현명한 사람은 모든 일을 순리에 따라 행하기 때문에 그 과정이 자연스럽고 결과도 효과적이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은 서두르고 결과에만 집착하기 때문에 일을 그르치고 낭패할 때가 많다.
우리사회에는 언제부터인가 이런 어리석음이 개인의 일 뿐아니라사회나 단체의 일에까지 팽배하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성급함과 결과중심적인 일처리 방법이 우리의 모든 것을 부실하게 만들고 결과의 정당성을 부인하려는 불신으로 나타나고 있다.
결과가 과정을 정당화시키는 문화가 개선되지 않는한 우리 사회각 부문의 발전은 한계에 부딪치고 말 것이다.
이제 우리만이 우리식대로 살 수 없는 국제화시대가 되었다.
모든 사람이 정의와 형평에 입각해 평화롭고 자유스럽게 살아가기를 원한다.우리만이『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그만이다』는 식으로 적당주의와 결과지상주의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모두가 우리의 일처리를 불신하고 결과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오늘날까지 쌓아올린 것들은 그 어리석은 농부의 농사일밖에 더 되겠는가.
적당주의를 수치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정착될 때 우리 사회는 오늘과 같은 불신이 가시게 될 것이다.
요행으로 이득을 취하고 운으로 富를 누린다면 어느 누가 그 이득과 富를 존중하려 하겠는가.
국제화의 가장 급선무는 우리가 하루속히 적당주의와 결과주의를극복하는 일이다.
〈하나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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