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동물중 가장 많은 種은 딱정벌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5면

생물학자 중에서 가장 두뇌 회전이 빨랐던 사람으로 홀데인(J B S Haldane)을 꼽는다. 그는 학문적인 업적도 탁월했지만 객담 속에 툭툭 내뱉는 말들의 기발함과 심오함으로 더 유명하다. 어느 날 대학 앞 술집에 모여 앉은 사람들 중 누군가가 홀데인에게 "생물의 진화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조물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오?"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홀데인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러나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조물주께서는 딱정벌레를 병적으로 좋아하셨던 같다"고 답했다 한다.

조물주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딱정벌레 한 마리를 흙으로 빚어 입김을 불어넣으신 후 그게 고물거리며 움직이는 걸 보시고 스스로 너무 좋아 모양을 달리하며 또 만들고 또 만들고 하다 보니 이 지구가 이 책의 제목처럼 '딱정벌레 왕국'이 되었다는 얘길 그렇게 한 것이다. 지금까지 발견되어 이름이 붙은 딱정벌레는 줄잡아 35만종.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 종 전체의 3분의1이 넘는다. 1만종이 채 안 되는 개미가 무려 1경마리나 있을진대 딱정벌레는 도대체 몇 마리나 살고 있을까?

글쓴이 한영식은 대학 시절 딱정벌레에 매료되어 1993년 '비틀스(beetles.딱정벌레들)'라는 동아리를 만들었다. 그러곤 지금까지 줄곧 딱정벌레를 찾아 전국을 헤집고 다녔다. 지난 10년 동안 무려 1천여종에 가까운 딱정벌레를 관찰하고 채집했지만 동정(同定)조차 되어 있지 않은 것들이 너무도 많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표본 상자가 쌓인 방에 누워 있을 때면 이름 없는 딱정벌레들이 이름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약 3천종의 딱정벌레가 기재되어 있다. 어림잡아 1만종은 아직도 곤충학자의 눈길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한영식은 아직 대학원 과정을 밟아 박사학위를 받지 않은, 세상 기준에 따르면 아마추어 곤충학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이 땅의 어느 전문 곤충학자 못지않게 폭 넓은 관찰 경험을 가진 '학자'다. 우리나라에 있는 1백개의 딱정벌레 과(科) 중 중요한 과들은 모두 이 작은 책에 망라되어 있다. 특히 현재 강원대 생물학과 학생인 이승일이 찍은 3백23장의 사진은 실로 압권이다.

아직 직접 만나진 못했지만 후학들이라 생각하고 '쓴소리' 몇 마디만 하련다. 정말 예쁘고 충실한 책이지만 띄어쓰기를 비롯한 편집 미숙이 가끔 눈에 띈다. 특히 쉼표를 남발한 것은 정말 눈에 거슬린다. 우리나라 딱정벌레들을 적어도 과 수준에서라도 검색할 수 있는 분류표를 하나 만들어 주었더라면 이 책을 읽고 뛰어나가 딱정벌레를 잡아 손에 쥔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이 책은 물론 다른 아마추어 곤충 매니어들을 위해 저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지만 학문적으로 좀더 깊이 있는 연구 결과들도 군데군데 소개했더라면 재미뿐 아니라 지식도 더 풍부하게 제공할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마 그건 그의 다음 책일 것만 같다. 어쨌든 축하하오, 후배들! 참 좋은 책을 썼구려.

최재천(서울대 생명과학부, '개미제국의 발견' 저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