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운영예산 343억 증액 與野, 제몫 챙기기 ‘합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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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호 01면

A의원=“의정활동 보고서를 8만 가구 정도 발송하면 2000만원 이상 드는데 이렇게 비현실적인 예산으로….”

예산처서 243억 늘려줬는데도 100억 또 추가

B의원=“비행기를 타고 가면 2시간 만에 도착하는데, KTX 타고 가면 5~6시간 걸려요. 매주 두세 번 (지역구에) 가는데 건강도 문제가 있고 아주 심각합니다.”

국회사무처=“예, 그래서 저희가 안을 마련했습니다.”

B의원=“아, 오케이. 그러면 상정하세요.”

지난 10~11일 국회 운영위원회의 예산안 심사에서 오간 대화다. 국회 운영위는 심사 과정을 거쳐 내년 국회 예산안을 올해보다 343억원(8.7%) 늘려 짰다. 국회사무처·기획예산처가 협의를 거쳐 제출한 예산안에서 243억원이 이미 증액됐는데, 여기에 99억6900만원을 덧붙인 것이다. 이렇게 결정된 예산 총액은 4285억4100만원. 정부 부처 예산안은 국회에 오면 원안보다 삭감되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여야는 12월 대선을 앞두고 벼랑 끝 대치를 하면서도 자신들을 위한 예산 증액에는 한목소리를 낸 것이다.

우선 의원 공무 수행 출장비가 원안보다 4억1400만원 늘었다. 명목은 ‘공무’로 돼 있지만 대부분 지역구를 다녀오는 비용이다. 올해 예산은 4억7400만원. 이 돈으로 의원당 월 2회 KTX를 탈 수 있었다. 국회 측 요구로 내년부터는 서울~제주 1회 왕복 항공료에 해당하는 6000만원을 더 주는 안이 제출됐으나 의원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의원들은 “지역구가 멀어 오가기 힘들다”며 항공편 혜택을 확대했다. 왕복 항공편을 1년에 8차례 이용할 수 있도록 예산을 늘린 것이다.

의정보고서 같은 정책자료를 발송하는 비용도 8억9700만원 증액했다. 이에따라 의원 한 사람이 쓸 수 있는 발송비는 200만원에서 400만원으로 늘었다.

또 방송발전기금에서 지원받기로 돼 있던 국회방송 운영비 65억원은 국회 자체의 일반회계 예산으로 꾸리기로 했다. “필요한 기기를 자율적으로 살 수 있고, 의정활동이 더 많이 알려져야 한다”는 논리였다. 방송발전기금이 지상파·유선방송 사업자들에게서 거둬들이는 반면 일반회계는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꾸려진다. 사무처 관계자는 “항목을 옮기는 것일 뿐 ‘순증’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으나 일반 국민 부담으로 바뀐 사실은 인정했다.

한경대 이원희(행정학) 교수는 “의원들이 의정활동에 필요한 경비를 늘리는 것과 표밭 다지기처럼 개인 이익을 위해 예산을 쓰는 것은 완전히 다르게 봐야 한다”며 “이런 차원에서 의원들이 비행기 타고 지역구를 가는 데 예산을 배정하는 것은 전형적인 자기 몫 챙기기”라고 지적했다.

운영위는 제2 의원회관 건립비를 대폭 늘리는 안도 통과시켰다. 올해 시작된 이 사업의 당초 건립비는 895억원. 사무처는 “예상보다 비용이 더 든다”며 총건립비를 1802억원으로 늘려 잡았다. 내년 142억원, 2009년 400억원, 2010년 560억원을 집행할 예정이다. 사무처 측은 “제2 의원회관이 세워지면 현재 의원실보다 1.5~2배 넓어질 것”이라고 했다.

반면 국회 운영위는 대통령 비서실 예산안을 10억7000만원 깎은 669억3800만원으로 수정 의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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