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레터] 북디자이너들의 '쟁이 근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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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책을 사람에 비유한다면, 표지는 분명 얼굴일 겁니다. 외모에 대한 편견을 깨라고 아무리 소리를 높여도 예쁘고 잘 생긴 얼굴에 호감이 가듯, 책의 첫 인상은 표지가 좌우합니다. 오죽하면 ‘표지를 보고 그 책을 평가하지 말라(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는 영어속담까지 있겠습니까.

이번 주 출간된 디자인 계간지 『GRAPHIC』은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표지를 고민하는 북 디자이너들을 다뤘습니다. 우리나라 대표급 북디자이너 21명이 담담히 그들의 속내를 털어놨습니다.

책 표지 디자인의 최근 트렌드는 캘리그래피(손글씨)와 가벼운 만화톤의 일러스트레이션이랍니다. 그래서 예전보다 훨씬 감성적으로 느낌을 전달하는 표지가 많아졌다지요. 이를 두고 프리랜서 북 디자이너 오진경씨는 “권위적이고 엄숙한 시대를 지나 개인의 다양한 목소리가 드러나는 문화 전반의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고 해석합니다.

우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이미지 과잉으로 지나치게 화려해졌고, 너도나도 유행을 따르다 보니 비슷비슷한 디자인이 양산됐다는 거죠. “책 디자인은 적어도 5년 정도는 그 신뢰감이나 디자인적 완성도가 떨어져 보여서는 안 된다”는 대명제를 다시금 되새기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제목 위주의 디자인이 강세를 띠고 있다는 것도 근래 두드러진 현상입니다. 인터넷 서점의 영향이지요. 그래서 디자이너들의 고민은 깊어갑니다. “인터넷 서점에서는 책 표지가 손톱크기만큼 노출되는데, 그 때문에 타이포그래피만 크게 하는 경우가 있다. 책의 생명력을 고려한다면 컨셉트에 맞춰 디자인하는 게 맞는데…. 독자 선택조차 못 받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해결이 어려운 문제다.”(정계수 프리랜서 북 디자이너)

열악한 출판환경도 북 디자이너들의 고민이랍니다. 대부분의 출판사가 쪼들리다 보니, 작업비가 10년 전에 비해 도리어 내려가는 추세라네요. “표지 디자인의 일반적인 가격이 150만원이라면 아주 뛰어난 디자이너는 1000만원을 받을 수도 있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200만원밖에 못 받는다”고 하소연합니다.

그래도 이들은 생활인으로서의 고민보다 ‘쟁이’로서의 근성을 더 강조합니다. “눈을 현혹하기보단 마음의 울림을 전하고 싶다”는 바람, “한 권의 책이 종이낭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 거기에다 “책의 정체성을 만든다”는 자부심까지. 이제 책 표지 한 장도 허투루 볼 수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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