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뇌 속을 손금 보듯 … 79. 이길여 회장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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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길여<左> 회장이 가천의과학대 김영보<右>교수와 함께

 “21세기는 뇌 과학 시대입니다. 첨단 뇌 영상을 이용해 뇌를 연구하는 연구소를 세우면 좋겠습니다. 백화점 식으로 뇌 학문 전체를 하기보다는 세계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이런 연구소를 만들어야 하고 또 이 일은 제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04년 이길여 길재단 회장이자 경원대 총장이 미국 UC얼바인에 가천의과학대 김영보 교수와 함께 필자를 찾아 왔을 때 이렇게 말했다. 이미 이 회장과는 꽤 진전된 뇌 연구소 설립 계획을 협의한 시점이었다. 그는 뇌 연구소를 세울 만한지 확인하기 위해 미국까지 온 것이다. 또 그런 연구소를 세운다면 내게 그걸 맡길 만한지도 보고 싶었던 듯했다. 나는 이 회장 일행에게 UC얼바인을 안내하면서 미국이 뇌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을 설명했다.

 이 회장도 가천의과학대의 대표 브랜드를 뇌 과학 쪽에서 찾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대다수 대학병원에 있는 암 연구동, 신장센터 등을 새로 만들어 봐야 미래 지향적이며 첨단 과학이라는 인상을 사회나 국가에 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 회장은 뇌 과학의 발전 현황과 장래성 등을 꼼꼼히 챙겼다. 또 내가 그동안 이룬 업적도 살펴본 것 같다. 연구소를 맡을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믿을 만한 사람인지가 가장 관심사였을 것이다. 심지어 내 걸음걸이도 자세히 보았다는 뒷얘기를 들었다.

 뇌과학연구소를 세운다면 그것을 맡을 적임자로 내가 거론됐는데 이 회장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본 결과 나에 대한 평가가 그렇게 좋지 않았다는 얘기를 다른 사람한테서 전해 들었다. KAIST에서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고 내 일만 하며 소신만 밀어붙여 주변 사람들이 호감을 갖지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더구나 언론을 통해 틈날 때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 정책을 비판해 온 나였다. 그런 일 때문에 KAIST를 떠나지 않았는가. 그러니 나를 좋게 평가하는 주변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이 회장은 한국으로 돌아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 대한 그같은 혹평을 무릅쓰고 결단을 내렸다. 뇌과학연구소를 세우고, 나를 그곳 교수 겸 소장으로 앉히기로 했다. 뇌 연구소를 세우려면 돈이 한두 푼 드는 게 아니다. 설립 때 수백억원이 들어가고, 매년 수십억원의 운영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런 결정은 아무나 하기 어렵다.

 이 회장이 나를 초빙한 것은 아마도 주변 평가보다는 나의 업적과 학문에 대한 열정을 더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사실 내가 남들처럼 주변 관리를 하기 위해 경조사에 빠지지 않고, 골프 치러 다니기나 했다면 지금과 같은 성과를 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누구 앞에서도 지난 40여 년 동안 한눈 팔지 않고 오직 학문 연구에만 죽기살기로 매달려 왔다는 것을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학장이나 총장 역할도 모두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또 내가 속한 대학이나 공공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생각마저도 부족한 나를 이 회장이 선택한 건 계속 그렇게 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조장희<가천의과학대 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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