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목기자의뮤직@뮤직] MP3 대학문화와 대학가요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제31회 MBC 대학가요제가 끝난 지 얼마 안 됐지만, 어떤 곡이 대상을 받았는지 기억이 벌써 가물가물하다.

수상곡보다는 MC가 진행을 잘했는지, 누가 게스트로 무대에 올랐는지가 화제가 되는 것을 보면, 기자의 기억력을 탓할 일만도 아니다. 대학가요제 수상곡들이 오랫동안 화제가 됐던 일은 먼 추억처럼 느껴진다. 기자의 마음속에 마지막으로 들어앉은 대학가요제 노래는 1993년 가수 김동률(당시 연대생)이 불러 대상을 받았던 ‘꿈속에서’라는 노래다. 대학가요제에 대한 감성의 시곗바늘이 90년대 초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주위 가요 관계자들에게 물어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005년 ‘익스’라는 그룹이 대상곡 ‘잘 부탁드립니다’로 인기를 끌었지만, ‘취업난’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화제가 됐을 뿐이다.

대학가요제는 왜 점점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일까. 90년대 중반부터 대형 연예기획사들이 신인가수의 배출을 독점하다시피하면서 ‘가요계에 젊고 신선한 피를 수혈한다’는 대학가요제의 효용이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달라진 대학문화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암울한 시대 상황에서도 꿈과 낭만을 노래했던 70, 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90년대 초만 해도 대학가에는 함께하는 ‘노래’가 있었고, 음악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토론이 있었다. 대학생 서넛이 모이면 그곳에는 항상 기타가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모두 MP3 플레이어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느라, 토론은 커녕 대화조차 없다. 음악 동아리만 해도, 취업 동아리들에 밀려난 지 오래다.

요즘 한창인 대학 축제만 해도 기성가수들이 판치는 음악 페스티벌로 변질됐다. 가수 양희은씨는 “학내 밴드나 음악 동아리들이 축제 무대에 오르던 예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대학가에서 노래는 음악을 업으로 삼으려는 실용음악과 등 일부 학과의 전유물이 됐고, 대학가요제 참가자도 이들이 대부분이다.

대학가요제 노래도 대학생다운 신선함과 뜨거움이 느껴지기보다는 주류 음악을 흉내 내기에 급급하다는 느낌이 든다. 심사위원단의 판정과 네티즌의 의견이 종종 충돌을 빚는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다. 대학가요제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발적인 아마추어리즘이 부족한 것은 그 토양이 되는 대학 문화가 생명력을 잃어 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투박하지만, 실험정신과 젊은 에너지가 용솟음치던 옛 대학가요제 노래들이 그리워서일까. 기자가 요즘 흥얼거리는 노래는 대학가요제 1회(77년) 대상곡인 ‘나 어떡해’(샌드페블즈)다. “나 어떡해/너 갑자기 가버리면/나 어떡해/너를 잃고 살아갈까….”

정현목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