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 2월국회 현안] '이라크 파병' 비준 더 늦출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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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라크 파병안이 9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이웃 나라 일본은 이미 자위대 파견이 이뤄져 이라크 재건사업에 착수했는데, 똑같이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는 전통적 혈맹인 한국은 파병안이 국회도 통과하지 못한 채 파병이 지연되고 있다. 일본 외교가의 한 고위관계자는 일본 내에서도 반미(反美)기류가 한국 못지않게 강하지만 정책은 항상 미국 편향적으로 흐르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 국익에 가장 최선인가를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은근슬쩍 한국의 대외정책을 꼬집었다.

자국의 군대를 해외에 파병하는 일은 한국보다 일본이 훨씬 어려운 상황이다. 일본의 평화헌법 제9조 후반부에는 국제분쟁에 일본의 군사력을 파견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명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헌법의 제약을 넘어 파병을 결행한 것은 미국에 대한 사대주의도 아니고, 그리고 '자주'가 훼손되는 것도 아니고 분명한 국가적 명제인 '국익'을 최우선시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똑같이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는 일본은 일본의 안전보장을 미국과 함께 하기로 이미 결심했기 때문에 군사동맹 미국을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일본은 과거에 '국방의 무임승차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국가안보는 미국에 맡기고 오로지 경제성장에만 몰두해 그 결과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돼 있다. 이제 국가안보를 미국에만 맡길 수 없는 대내외적 형편이 되자 국가규모에 걸맞게 정책과 행동을 변경하며 국익실현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일본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한국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국가안보를 미국에 크게 의존하면서 국민 모두가 일치단결해 오늘의 경제적 풍요를 일궈냈고 이 안보구도는 우리의 국력이 더욱 커지는 날까지 계속돼야만 하는 안보구도인 것이다. 이라크 파병은 이러한 한.미 군사동맹의 구도 위에서 이뤄지는 것이고 이뤄져야만 하는 국가정책이다.

정부의 이라크 파병 추진 일정은 2월 말까지 부대편성을 완료하고 5~7주간의 교육훈련을 거쳐 한.미 간에 합의된 파병시점인 4월 말까지 파병을 실행한다는 것인데 만약 국회 통과가 늦어져 미국과의 약속이 지켜지지 못한다면 한.미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미국은 당초 미군부대의 교대를 이유로 한국군이 2월 말 파견되길 원했으나 한국이 4월 말 파병을 제안하자 양보한 것이다. 그런데 이마저 지키지 못하게 된다면 국가 간의 신뢰에 오점을 남기게 된다.

생각과 행동이 분명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기획이 마련되지 않는 법이다. 이라크 파병도 마찬가지다. 정부 방침이 정해졌으니 국회가 이를 조속히 승인해야 이라크 파병에 대한 종합적인 청사진이 여유롭게 나올 수 있다. 이라크 파병은 단순히 군대가 파견되는 행사가 아니라 한국이라는 이미지가 함께 따라가는 총체적인 국가규모의 행사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중동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인도주의적이면서도 평화지향적인 한국의 인상을 심을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획이 깃들어져야 한다. 미국과 약속한 날짜는 점점 다가오고 있는데 쫓기듯이 일정을 잡아주면 여러 가지 준비가 부진해 맞을 수 있는 안전사고의 가능성도 있고 이라크 내에서의 대민사업도 충실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의 병사들이 이라크에서 마음놓고 활동할 수 있도록 국회가 조속한 결론을 내 주어야 할 것이다.

대다수의 한국 국민이 주한 미군의 존재가 한국의 평화와 경제적 번영에 필수 불가결한 요건이라고 생각한다면 미국과 약속한 일정에 차질없이 화답해 주는 것이 미국민의 심정을 섭섭하게 하지 않는 일이라 생각된다. 미국은 여론의 정치를 하는 나라다. 지금 미국은 대통령 선거 열기로 가득 차 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국민의 지지가 달라지는 것을 보면서 미국은 국민 여론에 의해 그 모든 것이 결정되는 나라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면서 한.미관계도 그러한 선상에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김경민 한양대 교수.국제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