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혜걸의 건강 이야기] 여전히 닭·오리고기 안드시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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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 하나.

해마다 바닷물의 온도가 따뜻해지는 6월이 되면 가슴 졸이는 사람들이 있다. 양식장 어민과 횟집 주인들이다. 연례행사처럼 발표되는 비브리오 패혈증 주의보 때문이다. 해마다 비브리오 패혈증으로 20여명이 숨진다. TV뉴스에선 시커멓게 썩어들어가는 비브리오 패혈증 환자의 다리가 클로즈업되는 등 공포 분위기를 연출한다. 당연히 횟집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길 수밖에 없다. 비브리오 패혈증이란 갯벌에 서식하는 조개나 생선에 있는 비브리오 세균이 몸에 침투해 생긴 감염질환이다. 주로 이들을 날 것으로 먹거나 피부에 상처가 생긴 부위를 바닷물에 담글 때 감염된다. 일단 다리가 썩는 등 괴사 증세가 나타나면 40% 가까운 사망률을 보인다. 비브리오 패혈증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할 이유다. 그러나 설령 주의보가 내려졌다 하더라도 '회를 먹으면 곧 비브리오 패혈증에 걸린다'고 속단하면 곤란하다. 비브리오 패혈증은 대부분 간경변이나 심한 당뇨 등 면역력이 떨어진 환자에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설령 비브리오 세균이 있는 회를 먹는다해도 대부분 무사하다. 게다가 비브리오 세균은 횟감용 생선의 살보다 조개류에 많다. 조개류는 대개 횟감보다 끓여 조리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 경우 1백% 안전하다.

# 이야기 둘.

요즘 고깃집마다 '우리 업소는 한우를 쓴다거나 호주산'이란 광고 문구를 흔히 접한다.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매출도 뚝 떨어졌다고 아우성이다. 뇌에 스펀지처럼 구멍이 생기며 바르르 떨다 죽는 소를 보면 정말 고기 먹을 맛이 떨어진다. 그러나 정말 수입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릴까 냉정하게 따져보자. 현재 미국에서 확인된 광우병 소는 한두 마리뿐이다. 확인되지 않은 소가 있다 치더라도 수 십억마리 가운데 극히 일부일 뿐이다. 광우병이 그처럼 위험하다면 쇠고기 먹기를 금지해야 옳다. 하지만 전세계 어떤 나라에서도 광우병 때문에 국민에게 쇠고기를 먹지 말라는 조치를 내린 국가는 없다. 광우병의 총본산 영국도 마찬가지다. 설령 광우병에 걸린 소라 하더라도 살코기는 대부분 안전하다. 광우병을 일으키는 프리온은 살코기엔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이야기 셋.

닭고기나 오리고기 요리집도 죽을 맛이다. 조류독감 때문이다. 동남아 일대에서 사망자 속출 소식이 전해지면서 요즘 닭고기나 오리고기를 먹으면 미친 사람 취급받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 역시 과학적으로 두려움이 과대 포장된 느낌이다. 조류독감은 동남아 일대처럼 닭이나 오리와 집 안에서 장시간 지근거리에서 밀접한 접촉을 유지하는 사람들에게나 생기는 병이다. 우리나라에선 닭이나 오리에서 사람으로 옮겨올 확률은 드물다고 본다. 더욱 중요한 것은 닭고기나 오리고기를 익혀 먹을 경우 1백% 안전하다는 것이다. 요즘은 대부분 과거처럼 닭을 산 채로 잡아 요리하기보다 도축장에서 고기 형태로 만들어져 조리된다. 조리사는 물론 손님이 조류독감에 걸릴 확률은 전무하다고 봐야 한다.

물론 단 1%라도 위험하다면 경계심을 늦춰선 곤란하다. 단 한 사람이라도 비브리오 패혈증이나 광우병.조류독감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면 가볍게 볼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심도 정도 문제다. 우리 국민에게 가장 부족한 영양소의 하나가 단백질이다. 쉽게 말해 선진국에 비해 고기 소비량이 적다는 얘기다. 단백질은 근육을 만들어 힘을 내며 효소를 만들어 인체 내에서 수만 가지 신진대사를 주관한다. 또한 면역물질인 항체 원료가 되기도 한다. '생명=단백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건강 유지를 위해 필수적 영양소다. 그런데 이런 저런 이유로 생선과 쇠고기.닭고기 등 고기를 식단에서 모조리 추방한다면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누구도 비브리오 패혈증과 광우병.조류독감에 대해 '1백% 안전'을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확률이 수천만분의 1 내지 수억분의 1이라면 합리적 판단이 요구된다 하겠다. 벼락에 맞아 죽을 확률도 고작 5만분의 1이라 하지 않던가.

홍혜걸 의학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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