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에 영어 모르고 어떻게 삽니까" 인민대학습당 '열공' 모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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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양각도 국제호텔 한쪽에 외화예금을 유치하는 창구가 개설돼 있다. 고려은행 측은 2만 달러 이상을 예치할 경우 최고 연 10%의 금리를 지급한다고 밝혔다(左). 평양 인민대학습당의 어학실습실에서 근로자와 직장인들이 영어 강의를 듣고 있다. [평양=예영준 기자]

19일 오후 평양시 중구역 남문동 인민대학습당은 영어학습 열기가 뜨거웠다.

개별 헤드폰과 마이크 시설이 완비된 어학 실습실에서 20대 후반~30대 직장인들이 여성 강사의 강의에 귀를 쫑긋 세웠다. 수업은 100% 영어로 진행됐다. 수강생들의 발음은 다소 서툴렀지만 영어 발음을 반복하는 그들의 표정은 진지했다.

기자는 10.4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한국 취재진으로는 처음 방북해 평양의 사람들을 취재했다.

안내원에게 "적성국가의 언어인 영어를 학생도 아닌 성인들이 뒤늦게 배우는 이유가 뭐냐"고 묻자 무슨 당연한 것을 묻느냐는 식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 그걸 질문이라고 합니까. 요즘 세상에 영어를 모르고서 어떻게 살아갑니까. 과학기술 지식을 습득하려면 영어를 알아야지요."

이튿날 아침은 평양에서 두 시간 거리인 묘향산 기슭의 평북 향산에서 맞이했다. 거기서 목격한 등굣길 중학교 1학년 소녀의 영어 공부 모습엔 한국의 대입 수험생 같은 처절함마저 배어 있었다. 아침 일찍 산책을 하다 만난 소녀였다. 옆에 안내원이 없었기에 소녀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길거리의 소녀는 영어 교과서를 꺼내 들고 문장을 외워 가면서 학교까지 1시간30분을 걸어가고 있었다. "우리 학생들 모두 영어 공부 열심히 합니다. 이렇게 가면 통학길도 지루하지 않아요."

반미 이념이 지배하는 사회의 영어 학습 열기.

얼핏 모순돼 보이지만 평양에서 엄연히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18일부터 3박4일간 방북기간 중 만난 북측 관계자들에게선 한결같이 북.미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을 읽을 수 있었다. 특히 테러 지원 국가 해제 문제에 대해서는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대남사업 담당기구인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의 한 관계자는 "남측에서 병원을 지어주면서 보내준 장비가 386 컴퓨터인데 요즘 그런 구닥다리를 누가 쓰느냐"며 "그게 다 미국이 테러 지원국과 적성국 교역금지법으로 묶어놨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엔 미국이 약속한 것이니 테러 지원국 해제가 반드시 관철되리라고 본다"며 "지난번 북남 수뇌상봉(정상회담)에서도 종전선언을 함께 추진해 나가기로 약속까지 했으니 잘 협력해 나가자"고 말했다.

평양 거리에 나붙은 각종 현수막에서도 변화의 기운이 엿보였다. 지난해 10월 핵실험 이후 평양 거리에는 '핵보유국의 긍지를 가지고 제국주의자들의 도전을 단호히 짓부수자'는 구호가 등장했지만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를 메운 것은 '경제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을 강조하는 구호다. 평양역 광장, 낙랑구역 고층 아파트 단지, 평양체육관 앞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선 어김없이 '김일성 수령 탄생 95돌을 맞아 경제강국 건설에 일대 전환을 이루자' '뜻 깊은 올해 경제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에 혁명을 이루자'는 붉은색 바탕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평양의 평범한 주민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안내원의 눈을 피해 살그머니 선교거리로 나가 기계장비를 자전거에 싣고 가던 한 노동자를 붙잡고 대화를 나눴다.

-남측 대통령이 평양에 와서 김정일 위원장과 회담한 사실을 알고 있느냐.

"TV를 봐서 대략 알고 있다."

-남북이 많은 분야에서 경제 협력을 하기로 합의했는데 인민 생활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나.

"북남은 한 지붕 한 가족이니까 괜찮은데 아무래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건가.

"우리 민족끼리 아무리 잘해 보려 해도 미국 놈들이 이래라 저래라 하니까 그게 문제다. 그러니 북남이 힘을 합쳐 미국 놈들을 몰아내야 한다."

평양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대동강변 주체사상탑 꼭대기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조선전쟁(6.25전쟁) 당시 인구 40만 명의 평양에 미군이 42만8000발의 폭탄을 쏟아 부어 초토화시켰습니다. 그 뒤 우리 인민들은 미 제국주의자들이 100년 동안 평양에 발을 못 디디게 하자고 다짐했습니다."

낭랑한 목소리로 평양의 도시 역사를 설명해 가던 여성 안내원의 톤이 이 대목에서 갑자기 높아졌다. 북.미 관계에 해빙 기운이 퍼져가곤 있지만 주민들의 반미 의식은 여전했다.

평양=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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