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왜 촌지 비리를 학생에 전가하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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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서울시교육청이 학교 비리 근절 대책을 발표하면서 촌지를 준 학부모의 자녀에게도 불이익을 주겠다고 밝혔다. 성적 이외의 각종 학내외 포상에서 제외하겠다는 것이다. 뿌리 깊은 촌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는 이해하지만, 매우 잘못된 발상이다. 그릇된 부모의 교육관과 교원의 윤리 의식에서 비롯된 문제를 왜 어린 학생들에게 연루시키는가. 너무나 비교육적인 처사이며, 탁상행정의 표본이다. 빨리 철회해야 한다.

부모 문제로 자녀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은 연좌제에 해당된다. 명백하게 법에 어긋난다. 어린 학생이 받을 마음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생각해 봤는가. 그 학생이 불이익을 당하면 학교에서 소문이 나고, 집단 따돌림을 당할 것이 뻔하다. 부모와 갈등이 생겨 가정 분란이 일어날 소지도 크다. 포상을 받을 만한 모범 학생이 어른 잘못으로 인해 오히려 세상을 원망하면서 비뚤어진다면 누가 책임지겠는가.

비리 교사를 엄중 문책하기로 하고, 학부모회의 찬조금품 모금을 전면 금지한 것은 잘했다고 본다. 찬조금품 모금을 둘러싼 잡음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포나 형식에 그쳐선 안 된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해 교원의 금품·향응 수수 관련 징계 기준을 만들어 시·도 교육청에 통지했지만 크게 개선됐는지 의문이다. 교육현장과 교육청에선 솜방망이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교직사회도 이번 기회에 윤리의식을 강화해야 한다. 대다수는 ‘촌지 교원’이 아니라고 보지만,일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교직사회가 이런 교원들까지 모두 감싸려 하니까, 자정(自淨)이 어렵고 전체 교원들이 불신 받는 것이다. 촌지 문제가 불거질까 두려워 스승의 날에 휴교할 것이 아니라, 교원 평가를 받아들이는 등 스스로 부적격 교원을 과감하게 솎아내야 한다. ‘촌지 학부모’들도 촌지를 건네지 않으면 자녀가 불이익을 본다고 지레 걱정하지 말고, 교원을 믿어야 한다. 그래도 ‘촌지 교사’가 있다면 적극 대응하라. 촌지는 교원·학부모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다. 학생에겐 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