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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이 저지른 범죄는 권력형 범죄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2호 12면

경기 고양경찰서 이모(39) 경사가 지난달 흉기를 사전에 준비해 젊은 여성을 상대로 강도와 강간을 저질렀다. 비슷한 시기에 현직 경찰이 지하철에서 여성 승객을 성추행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고, 광주의 한 지구대에 근무하던 김모 경위는 여자 화장실에서 몰래카메라를 찍다가 적발돼 직위해제됐다. 지난 2개월 동안 언론을 장식한 경찰 범죄만 10여 건에 달한다.

경찰청이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3년부터 올 7월까지 범죄로 입건된 경찰은 1425명이다. 전체적인 범죄 건수는 주는 추세지만 한 해 200~400명의 경찰이 각종 범죄로 처벌받았다. 지난해도 257명의 경찰관이 범죄를 저질렀다. 범죄를 저지른 공무원 460명 중 절반이 넘는 숫자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다. 경찰 범죄에 대한 치밀한 원인 분석과 예방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경찰청은 경찰 범죄 예방을 위해 ‘민간 고충 상담관제’를 도입하기로 하고 지방 경찰청별로 정신과 의사와 목사, 심리치료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상담관 170명을 위촉할 계획을 발표했다. 상담관들은 일선 경찰관의 업무 스트레스를 적절히 관리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못하도록 완충지대 역할을 하도록 하겠다는 복안이다.

이런 대응은 경찰 범죄를 경찰 개개인의 업무 부적응 문제로 보고 내놓은 처방인 듯하다. 하지만 최근 발생하는 경찰 범죄는 그 범위나 수준의 심각성으로 볼 때 부적응 문제를 넘어서는 것이다. 물론 경찰이 저지른 범죄 중에는 가정형편 등과 같은 개인적인 이유 때문인 것도 있다.

그러나 개인의 문제나 책임만으로 돌릴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성폭행 피해자를 조사하다가 이 피해자를 성폭행하거나, 경찰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경계심을 늦춘 틈을 타 강도 행각을 벌인 것이 그런 예다. 이런 것은 공권력을 악용한 권력형 범죄라 할 수 있다. 화이트칼라 범죄, 경제인 범죄, 사회 지도층 범죄, 정치 권력가 범죄 등이 권력형 범죄에 해당된다. 자신이 가진 권력이나 지위·경제력을 이용해 위법적인 행위를 하는 경우다. 호주의 유명한 범죄학자 잔 셰러는 권력형 범죄를 ‘처벌받지 않는 범죄’로 규정했다. 범죄가 사실대로 드러나기 어렵고, 범죄 사실이 알려진다 하더라도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경찰 범죄 중 상당수는 국민에게서 받은 공권력을 집행하는 데 있어 기강이 해이해진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닌, 경찰 조직 전체의 문제다. 증가하는 경찰 범죄는 경찰 조직의 위기와 연결된다. ‘상담관 제도’로 경찰 범죄가 없어지거나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경찰 조직 자체의 자정 시스템을 강화하고 감찰 부서가 상시 감시할 수 있도록 제도를 효율적으로 운용해야 한다. 또 제 식구 감싸기가 아닌 일벌백계한다는 경찰 수뇌부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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