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의 프리즘] 두려운 ‘200달러 시대’ 시나리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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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도무지 국제 유가의 고공행진이 멈출 줄 모른다. 며칠 잠잠하다가 잊을 만하면 또 오른다. 마치 우는 아이 뺨 때리듯 구실만 있으면….

미국에서 주로 쓰는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 가격이 배럴당 80달러를 처음 넘어선 것은 9월 13일. 그 뒤 10월 11일까지 현물시장이 선 스무 날 동안 80달러 아래로 내려간 것은 딱 사흘이다. 우리가 주로 수입해 쓰는 중동산 두바이유는 아직 80달러를 넘진 않았지만 9월 중순 이후 72∼77달러 박스권에서 맴돈다.

연초 50달러를 조금 넘었던 게 이렇게 올랐으니 상승률로 보면 45∼53%다. 걸핏하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데 하도 두들겨 맞아서 그런지 감각이 둔해졌다. 그 여파로 10월 초 주유소 판매 휘발유값이 사상 최고 수준, 경유값은 사상 최고를 기록했는데도 놀라지 않는다.

더구나 상대적으로 저렴한 게 장점이었던 두바이유도 이제 더 이상 싸지 않다. 올 들어 10월 11일까지 평균가격을 보면 영국 북해산 브렌트유가 67.81달러, WTI가 66.71달러, 두바이유 63.89달러로 별 차이가 없다.

지난해 말, 올 초만 해도 올해 유가는 안정적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이것이 야금야금 올라 3월에 60달러, 7월에 70달러 벽을 무너뜨리더니 여름 끝자락 8월 하순부터 급격한 상승 랠리가 시작됐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원유 생산량을 크게 늘리지 못할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9월 11일 OPEC가 하루 50만 배럴(2% 정도)을 늘리기로 했는데도 유가는 더 올랐다.

생산량을 늘리기로 했으면 가격이 진정돼야지 왜 더 올랐을까? 수요는 계속 늘어나는데 공급에 한계를 보이고 불안정해서다. 석유 공급은 이미 2005년에 정점에 이르렀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런데 수요는 계속 거침없는 하이킥이다. 세계적으로 미국이 여전한 석유 수요 1등국이고, 2등이 두 자릿수로 성장하는 중국이다. 요즘은 중동 국가들도 석유 소비를 늘리고 있다.

문제는 배럴당 80달러대에서 그치지 않으리란 점이다. 이미 ‘100달러, 200달러 설’까지 나돈다. 100달러 설은 2005년 3월 미국 투자은행 골드먼삭스가 제기했다. 당시만 해도 50달러대였는데 100달러를 예고하면서 ‘수퍼 스파이크’라고 명명했다. 불행하게도 이게 점차 현실화하는 모습이다.

골드먼삭스는 올 7월 23일 올해 95달러, 내년에 100달러를 넘을 수 있다고 예고했다. 보고서를 본 투자자들이 원유 시장으로 몰리는 등 투기 수요도 있다. 아직 북반구에 겨울이 오지 않았는데도 이러니 겨울철 난방 수요까지 가세하면 정말 95달러가 될지도 모른다.

200달러까지 가리란 끔찍한 전망은 석유 고갈론에서 나온다. 이른바 ‘피크 오일 이론’이다. 원유 생산량이 앞으로 한동안 정체상태를 보이다 2010년께 감소세로 돌아서고, 2030년에 가면 지금의 3분의 1로 줄어든다는 이야기다. 국제유가가 쑥쑥 오르니 이를 지지하는 전문가들이 늘고 있다.

반론도 있다. 세상에는 충분한 원유가 있으며 정유사의 기술력으로 새로운 유전 개발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OPEC는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이 둔화되면 원유 수요가 1% 정도 줄고 가격이 80달러 아래로 내려갈 것으로 본다. 문제는 지금 기름 수요와 가격을 결정하는 게 미국보다 중국·인도 등 개발도상국과 중동 국가라는 점이다. 더구나 중국은 내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있다.

국내에도 국제유가전문가협의회란 기구가 있다. 9월에 회의를 열었다. “배럴당 70달러대 아래로 내려가진 않을 것이다. 4분기에 그렇게 빨리 오르지도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망인지, 희망사항인지 구분이 안 간다.

굳이 피크 오일 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에너지 소비는 지나치다.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을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눈 소득 대비 에너지 사용량이 0.05로 일본(0.018)·독일(0.035)·프랑스(0.036)·미국(0.049) 등 선진국보다 훨씬 많다. GDP로는 세계 11위권인데 석유 소비량은 7위다. 산업(설비)도, 가계도 석유를 많이 쓴다.

오일 피크는 시간 문제지 언젠가는 온다. 석유 중심 에너지 다소비 산업구조를 바꾸는 중장기 대책이 당장 가동돼야 한다. 대체에너지 개발에도 더 노력하고. 대선 후보들은 이런 공약은 왜 안 하나.

양재찬·편집위원
jay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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