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이마트발 가격파괴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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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이마트발 가격 파괴’ 실험은 성공할 수 있을까. 자체 상표(PL)로 만든 물건을 일반 제조사 브랜드(흔히 업계에서는 ‘내셔널 브랜드’라고 한다)보다 20∼40% 싸게 공급한다는 이마트의 계획은 소비자들로부터는 일단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마트가 PL 상품과 일반 브랜드 제품을 나란히 진열한 결과 대다수 상품에서 PL의 판매가 월등했다. 이마트가 18일 판매 상황을 집계한 결과 즉석밥에서는 PL상품인 ‘이마트 왕후의 밥’이 CJ햇반과 오뚜기햇반보다 4∼8배가량 많이 나갔다.

해태콜라에서 납품 받는 이마트콜라도 1위 업체인 코카콜라보다 1.5배가량이나 많이 팔렸다. PL제품보다 일반 브랜드가 많이 팔린 상품은 라면 정도가 유일하다는 게 이마트 측의 전언이다. 농심 신라면이 ‘이마트 맛으로 승부하는 라면’보다 두 배가량 많이 팔려 1위 브랜드의 자존심을 지켰다. 하지만 이마트발 가격 파괴 실험이 성공할지는 아직 더 지켜봐야 한다. 당장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이 “지켜보겠다”고 나섰다.

권 위원장은 18일 “이마트가 싸게 공급하면 소비자에게 일단 좋은 것”이라면서도 “그 부담이 제조업체에 전가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고 경쟁관계에 있는 중소 유통업체가 살아남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대형-중소형 유통업자가 공존할 수 있도록 유통업 분야의 공정거래 정책 방향을 조만간 발표하겠다”고 덧붙였다. “필요하다면 조사도 하겠다”고 했다. 이마트의 가격 파괴가 자칫 시장 질서를 어지럽힐 경우 공정위가 나설 수도 있다는 의미다.

제조업체의 반발도 문제다. 유통업체에 제조업체가 휘둘리게 된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할인점 업계 1위 업체인 신세계의 전략이기에 더욱 긴장감을 준다. 한 중견 식품업체 대표는 회사 내부 대책 회의에서 “유통업체가 우리의 등을 치고 있다”며 격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세계 측은 공정거래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오해’라는 반응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현재의 생산·유통 구조상 일반 제조 브랜드로는 더 이상 가격을 낮출 수가 없다고 판단해 선택한 것이 PL 확대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처음에는 제조업체에 충격이 없을 수 없겠지만, 이런 유통 방식이 일반화되면 제조업체들도 원가 절감 노력을 더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이익이 돌아갈 것이라는 게 신세계 측 시각이다. 새로운 시장질서 형성에 당국이 끼어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외국 대형 유통업체들의 자체상표 매출 비중은 30% 이상으로 한국 유통업체들보다 훨씬 높다. 세계 최대 할인점 업체인 미국의 월마트는 40%, 미국 2위 업체인 타겟은 32%에 이르며, 영국 테스코도 자체 상표로 매출의 절반가량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이들 업체는 세계 각국의 제조업체들에 아웃소싱하는 비중이 많아 국내 유통업체와는 사정이 다르다는 지적도 있다.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한국의 상황에서는 중견·중소 제조업체들의 존재 기반도 고려해야 한다는 ‘상생의 논리’가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손해용·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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