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문바둑칼럼>동경의 한국잔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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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스모,가부키,그리고 바둑.
敗戰후 맥아더로부터 제일먼저 天皇制를 지켜낸 日本의 관료들은밀려드는 서구문화 속에서 일본의 넋을 지키기 위해 꼭 보호해야할 문화유산으로 이 세가지를 꼽았다고 한다.그게 어느 정도 사실인지 알 수 없지만 서구 쪽에서 일본문화를 소개하는 행사가 벌어지면 바둑이 약방의 감초처럼 끼어들곤 했던 것은 분명하다.
지난 6일 東京의 九段회관.왼쪽으로는 일본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神社가 있고,오른쪽으론 황궁터가 있는 이곳에서 韓國의 曺薰鉉9단과 劉昌赫6단이 마주앉아 있었다.지난해와 똑같이 두 사람은 일본의 요미우리 신문사가 주최하는 제7회 후지쓰배 세계바둑대회 우승컵을 놓고 일본의 한복판에서 결승전을 펼치고 있었다. 올해의 바둑승부중 가장 큰 상금(1억6천만원)이 걸린 한판이었기에 1천명 가까운 일본팬들이 해설장에 몰린 것은 어쩌면당연했다.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미묘한 기류가 대국장과 해설장을감싸고 있었다.지난해와 달리 아무도 한국인끼리의 결승전에 대해입을 열지 않았다.침묵속에서 그들은『일본바둑은 기어이 한국에 꺾였는가』자문하는 것 같았고『그럴리 없다』고 완강히 부정하는 것같았다.
대국은 曺9단이 초반부터 질주했으나 劉6단이 곧 따라잡아 반집승부로 어울려 붙었다.그러나 여기서 劉6단이 크게 실족했고,이 순간 曺9단은 세계 4대기전 석권의 대기록을 세우며 우승컵을 손에 넣었다.
3,4위전에서 林海峯9단에게 진 趙治勳9단은 소리없이 자취를감췄다.그러나 曺9단과 劉6단은 한참이나 정답게 복기를 나눴다.가만히 보니 이날 대국한 네사람중 일본기사는 한명도 없었다.
또 일본의 일류기사는 한명도 구경오지 않았다.
일본의 기자가 曺9단에게 물었다.
『이제 세계의 큰 棋戰은 모조리 한번씩 우승했다.앞으로의 목표는.…혹 일본의 1인자인 趙治勳인가.』 曺9단은 손을 내저으며 일본말로 말했다.
『아닙니다.李昌鎬가 목표라고 하는게 맞겠지요.나는 한국타이틀이 하나밖에 없거든요.』 그리고는 활짝 웃으며 한국말로 이렇게중얼거렸다.『아직 창호를 놔줘서는 안되는데….』 시상식에서 요미우리의 쇼리키社主는『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한국기사들끼리결승전을 두었다』고 했을뿐 더이상의 논평은 하지 않았다.3위를한 중국인 林海峯9단은『한국의 독무대를 어떻게든 견제하고 싶다』고 한걸음 나아갔다.
曺9단은『나에겐 최고라 할 수 있는 일본인 스승이 한사람도 아니고 두사람이나 있었다.그들에게 보은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말했다.일본팬들은 비로소 우레와 같은 박수를 터뜨렸다.
조총련계 재일동포들이 축하하러 몰려왔다.재일조선인바둑협회장 具모씨는『내일 사상처음으로 민단측 1백10명과 조총련측 1백10명이 원코리아바둑대회를 갖게 됐다』며『바둑이 화합의 선봉』이라고 자랑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敗者 劉昌赫6단이 曺薰鉉9단에게『축하합니다』고 손을 내민 것도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바둑이 일본의 문화유산이든 한국의 문화유산이든 그건 나중 문제이고 한국바둑의 잔칫날에 한국사람들은 여유있고 신사적이었으며그것만으로도 이날은 충분히 의미있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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