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 출신 경기지사 … 서부벨트 표 묶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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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제 민주당 대선 후보가 16일 경기도 고양 킨텍스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뒤 손을 들어 지지자들에게 답례하고 있다. [사진=강정현 기자]

민주당 이인제 후보가 세 번째 대권에 도전한다. 그는 1997년 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회창 후보에게 패한 뒤 탈당한 다음 국민신당을 창당해 대선에 처음 출마했다. 당시 500여만 표(3위)를 얻어 파괴력을 보였다. 이번 민주당 경선에서 이 후보는 초반에 앞서가던 조순형 후보의 대세론을 꺾고 대선 티켓을 거머쥐었다. 두 차례 전국 단위의 경선을 치른 경험을 바탕으로 탄탄한 조직력을 가동했고, '민주당 재건의 주역이 되겠다'는 호소를 앞세워 당원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그의 2007년 대선 전략은 '서부벨트 결집론'으로 요약된다. 그는 충남 논산 출신으로 경기지사를 지냈다. 여기에 그를 대선 후보로 만들어준 민주당은 주된 지지 기반이 호남이다. '호남+충청'의 과거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을 재연하고 여기에 서울.경기 등 수도권을 보탤 경우 승리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또한 이는 단일화 논의에 대비한 전략이기도 하다. 이 같은 서부벨트 결집이 가능해지려면 전북 출신인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보다 자신이 적격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인제 후보는 자신이 단일화 시한으로 정한 11월 중순까지 이 같은 논리를 집중적으로 전파할 것으로 보인다. 설득 대상에는 동교동계 등이 포함될 것 같다.

물론 그가 극복해야 할 과제도 많다. 그는 '경선 불복'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다.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대세론을 구가하다가 '노풍(盧風.노무현 바람)'에 무너져 고배를 마셨다. 그는 정치 역정 20년간 여덟 차례 당적을 바꾸는 진기록을 세웠다. 이 후보 측은 이에 대해 "합당과 당명 변경 등을 빼면 순수한 당적 변경은 네 차례뿐"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어쨌건 참신하다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생겼다.

이 후보는 이날 후보 선출 대회에서 "'국민이 다 이해해 주겠지' 하고 생각했던 것 자체가 잘못이었고, 주권자인 국민에게 걱정을 끼치면 무조건 잘못이라는 걸 절감했다"며 자신의 과거 행보에 대해 사과했다.

◆농민의 아들에서 대선 후보로=이 후보는 48년 충남 논산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학비가 없을 정도로 어려운 살림이었으나 뛰어난 학업 성적으로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대학 시절 학생운동 서클인 '사회법학회'에 가입해 전태일 분신 사건과 3선 개헌 반대운동으로 촉발된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사법고시에 도전했고 3년간의 판사 경험을 쌓은 뒤 산업재해.해고 사건 등을 담당하는 노동인권 변호사로 거듭났다.

87년 6월 항쟁 당시 정계 입문을 결심한 그는 통일민주당 민족문제연구소 이사를 하다 88년 13대 총선에서 당선돼 39세의 젊은 나이로 국회에 입성했다. 90년 3당 합당으로 민자당에 합류한 그는 김영삼 정부 시절 최연소 노동부 장관에 기용된 이후 초대 민선 경기지사에 당선됐다.

김성탁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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