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트렌드>프랑스철학서 실증적 접근에 독자들 매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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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쥘르 들뢰즈의『앙티 오이디푸스』,피에르 부르디외의『혼돈을 일으키는 과학』,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의『사회의 상상적 제도』,자크 라캉의『욕망이론』,로제 카이와의『놀이와 인간』,에드가모랭의『지구는 우리의 조국』등 지난 몇개월 사이 에 국내에 소개된 프랑스 사상서만도 10여권에 이른다.
국내 철학 전문가들중에서 프랑스어 할줄 아는 사람을 찾기 어렵고 몇년 전만 해도 일반독자들의 귀에 익은 프랑스 철학자가 사르트르와 베르그송 정도였던데 비하면 상당한 변화임에 틀림없다. 이중에서 자크 라캉의『욕망이론』은 출간 4개월만에 6천부가팔렸으며 지난 91년에 소개됐던 장 보드리야르의『소비의 사회』역시 최근 7쇄를 찍었을 정도로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들 사상가외에도 미셸 푸코.자크 데리다.에드가 모랭.장 프랑수아 리오타르.피에르 부르디외등 현재 프랑스 사상계를 지배하고 있는 사상가들이 거의 빠짐없이 국내에 소개됐다.이들의 주장은 사상가들에 따라 큰 차이가 있지만 과학과 이성 에 대한 회의로 요약할 수 있다.
에드가 모랭의 경우 현대사회의 각종 문제에 있어 현재 합리적인 해결책으로 평가받는 것이 오히려 비합리적이라고 주장,인간과자연의 융화로까지 사고의 확대를 꾀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기술발전이 인간에게 편의를 가져다 준것 같지만 오히려 심각한 환경파괴를 야기해 인간에게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설명이다.
마르크스주의자로 출발한 카스토리아디스를 보면 동구권 붕괴를 이성에 대한 지나친 믿음에서 찾고 있다.마르크스 이론이 서구철학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이성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역사를 결정론적 틀로 이해했기 때문이라는게 그의 분석이다. 크게 봐서「포스트 구조주의」로 묶을 수 있는 이들 사상서들의 특징은 환경.대중문화.정치.경제등 철저히 현실에 토대를 두고 과학.문학.사회현상등과 철학을 융화시키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구체성을 결여한 사변적인 철학에 식상 한 국내 독자들에게 프랑스 사상이 신선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도 바로이같은 실증적 접근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로 프랑스 사상가들은 사상가라는 이름으로보다는 다른 이름으로 더 흔하게 불린다.라캉이 정신분석학자,보드리야르가 기호학자,「구조주의」의 대가였던 레비 스트로스가 인류학자로 더 널리불렸던 것이 대표적 케이스다.
프랑스 사상이 우리 독자들의 관심권으로 들어온 또다른 이유는우리 사회도 80년대의 변증법적 패러다임으로는 사회현상을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전문화.세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과거 노동운동이 지배적이었던 우리 사회에서 환 경운동.여성운동.지역자치운동등이 확산되고 있는 것도 사회변화의 한 예가 된다. 이런 현상과 관련,외국어大에서 철학강의를 맡고있는 李正雨씨(34)는『프랑스 사상을 그대로 수용하기보다는 고답적인 우리철학을 보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제,『그들의 사유체계를 원용해 우리 현실의 각종 현상을 파악하고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새로운 사상에 대한 독자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책을 번역.출간하는 것 못지않게 번역수준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는 지적도 많다.80년대 프랑스 유학파들이 귀국해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 감으로써 프랑스 사상서의 번역수준은 과거에 비해 크게 높아졌지만 아직도 미진한게 사실이다. 〈鄭命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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