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광활한 텍사스 황야에 압도-자이언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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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영화『자이언트』에서는 50만 에이커가 넘는 리아타왕국의 목장주 빅 베네딕트(록 허드슨),정치 도시 워싱턴의 상류사회 부잣집 딸로 리아타로 시집가 씩씩한 서부의 여인으로 변모하는 미녀레슬리(엘리자베스 테일러),반항적인 일꾼이었다가 석유왕국 리틀리아타를 건설해 대부호가 되는 제트 링크(제임스 딘),심지어는황야의 강인한 여인 러즈(머세데스 매켐브리지)보다 미국의 텍사스라는 광활한 땅 그 자체가 주인공이다.
세계의 어느 다른 곳에도 없고 미국에만 존재하는 영화와 문학장르가 이른바 서부개척을 배경으로 삼은 웨스턴이고,서부소설이라면 우리나라의 김소월만큼이나 유명한 미국의 작가가 『혼도』등 영화로 우리에게 소개된 루이 라무어지만 총질이 단 한번도 없는유명한 서부소설『자이언트』의 작가는 에드나 훠버(1897~1968)라는 여자다.
그리고 여자가 쓴 이 소설에 담긴 얘기 규모를 보면 우리들은슬그머니 압도당한다.
글렌 포드.마리아 셸 주연에 앤터니 맨이 감독한 영화『시마론(Cimarron)』에서 말뚝만 박으면 누구라도 차지할 수 있는 임자없는 서부의 땅을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개척자들이 마차로 들판을 질주하는 웅장한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겠는데 그『시마론』역시 에드나 훠버의 원작을 영화로 만든 대작이었다.
마거릿 미첼의『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콜린 매컬로의『가시나무새』,심지어 우리나라 박경리의『토지』를 대하면 굵은 소설은 오히려 여자들이 더 잘 쓰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른 걸작 서부영화『셰인』도 우리에게 남겨준 조지 스티븐스감독이 1956년에 에드나 훠버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자이언트』를 보면 구질구질하지 않고 솔직해서 좋다.
거칠고 황량한 벌판이 흙바다처럼 한없이 펼쳐진 신비한 나라에서 솔직한 주인공들이 여유만만하게 전개하는 얘기를 보면 요즈음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낸 가짜 영상과 무지막지한 살육으로 관객을 속여 흥미를 끌어보려는 껍데기 영화들하고는 다른 지난 세대의 예술품이 얼마나 진실했는지를 새삼 느끼게 한다.
디미트리 티옴킨의 음악도 그렇고,구질구질하지 않은 텍사스의 풍경도 그렇고,제임스 딘이라는 기막힌 배우의 모습도 그렇고,『자이언트』는 요즈음처럼 치사하고 허약한 정신병을 앓는 많은 현대인들만 보고 살아서 지친 머리를 식혀주는 싱싱하 고 푸짐한 과일과 같은 영화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하소설이라고 부르지만 한 집안의 흥망성쇠를 다루는 서양의 서사시적인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흥미있는 공통점이 흔히 발견되는데 『가시나무새』와 『자이언트』도 예외는 아니다.그것은 그 1대를 이루는 주인공,즉『자이언트』 에서는 빅(Big)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조던 베네딕트 같은 인물이 대단히힘차고 진취적인 거인(giant)으로 묘사되고,『가시나무새』의1대 여주인공 매기처럼 남성적 인물로 우리들을 압도하는 반면 2대는 나약함을 보이며 무너지는 공 식을 따른다는 사실이다.
『자이언트』에서 아들 조던 베네딕트 3세(서양에서는 훌륭한 가문의 대물림을 상징하기 위해 아버지와 자식이 같은 이름을 문장처럼 소엉덩이에 낙인해 숫자를 매기고는 했다)의 생일날,아들은 말타기가 싫다고 하는데도 자식을 텍사스 황야의 사나이로 키우고 싶어했다가 실망하고 화가 난 아버지가 억지로 아이를 말에태워 달리는 인상적인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그리고 그 장면을 보면 자신은 영혼을 살찌우기 위한 일을 하나도 하지 않으면서 자식들만 피아노에 바이올린에 온갖 것을 억지로 가르치는 우리나라 여자들이 생각나기도 한다.한달에 1백만달러를 캐낸다는 텍사스의 석유 졸부와 우리나라 땅 졸부의 모습도 비슷하고.
청바지 차림에 삐딱하게 모자를 쓰고 근시여서 찌푸린 눈으로 킬킬거리며 반항하던 제임스 딘의 모습,유산으로 얻은 불모지를 활개치는 걸음걸이로 측량하거나 외로운 집에서 서투르게 끓인차를레슬리에게 내놓던 그의 모습과 Z자 손짓도 인상 적이었다.
『텍사스에 가면 뭐든지 크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광활한 땅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삼은 에드나 훠버와 아예 제목을 『토지』라고 붙여버린 박경리,두 여자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安正孝.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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