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병원이 '1일 교실' 이 된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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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전 서울 세브란스 어린이병원학교에는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소아암을 앓아 병원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친구와 선생님이 방문한 것이다. 지난해 10월부터 입원 중인 최희준(옥수초 5년)군도 친구들을 만나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소아암 환자인 홍현서(신북초 2년)군이 오랜만에 만난 같은 반 친구와 머리를 만지며 장난을 치고 있다. [연합뉴스]

1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33병동 예배실. 지난해 10월 갑자기 뇌종양 진단을 받고 입원 중인 최희준(11.옥수초 5년)군이 수줍은 얼굴로 학교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을 맞았다. 발병 이후 한 번도 학교에 가지 못했던 희준이에게 이날이 5학년 같은 반 친구들과의 첫 만남이다. 희준이는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났다고 했다. 지겨운 환자복 대신 1년 전 학교 다닐 때 입던 옷으로 갈아입었다. 희준이는 "(항암 치료를 받아) 머리카락은 다 빠졌고, 마스크도 쓰고 있지만 그래도 친구들과 비슷하게 보이고 싶어서요"라며 쑥스러워 했다.

희준이는 친구 정한(11)이의 손을 잡으며 "다시 학교에 온 것 같다"고 환하게 웃었다. 희준이의 까까머리를 매만지며 장난을 치던 정한이는 "앞으로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 자주 보낼게. 학교나 친구들 얘기도 해주고…"라고 말했다. 다른 친구들의 인사도 이어졌다. "병원에만 있으니 답답하겠다" "빨리 나아서 컴퓨터 게임도 하자. 별명도 지어 줄게." 처음 만난 친구도 있었지만 아이들은 이미 한 반 친구가 돼 있었다. 뇌종양 수술을 받아 말이 약간 어눌했지만 희준이는 또박또박 "나도 빨리 나아 (학교에) 갈게"라며 친구들의 격려에 답했다.

담임교사 김연희씨는 "아이들에게 아픈 친구를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됐고 희준이도 즐거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국의 초.중.고교가 '놀토'로 쉰 이날 세브란스 어린이병원학교에서는 어느 때보다 더 시끌벅적한 수업이 열렸다. 백혈병과 악성 림프종.뇌종양 등 소아암을 앓는 학생들이 아프기 전 다니던 초등학교.중학교의 담임교사와 친구들을 만난 것이다. 만남은 병원학교가 올해 처음으로 '건강장애 학생'을 위해 선생님과 친구를 초청해 이뤄졌다. 건강장애 학생이란 백혈병.소아암 등으로 3개월 이상 장기간 통.입원 치료가 필요한 학생이다.

유일영(연세대 간호대 교수) 세브란스 어린이병원학교 교장은 "치료 뒤 학교에 돌아가 친구들과 서먹해 하지 않도록 돕기 위한 복귀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행사에는 세브란스 어린이병원학교의 건강장애 학생 27명 중 5명이 참석했다.

◆돌아간 학교에서 부적응 예방=매년 장기질환으로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건강장애 학생은 3000명 정도다. 교육부는 이 가운데 1000여 명 정도만 병원학교나 특수학교 등에서 교육을 받는다고 말했다. 교육을 받게 되면 유급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병원학교에 오래 다닌 학생은 치료 뒤 학교에 돌아가 어려움을 겪는다. 교실보다 병실에 더 익숙해진 어린이 환자들이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일도 생긴다. 달라진 외모 때문에 자신감을 잃는 일도 있다. 중3 때 뇌종양을 앓았던 김민우(20.한국재활복지대 1학년)씨는 "1년 만에 돌아간 학교는 모든 게 낯설었다"며 "무엇보다 한 살 어린 친구들과 사귀기가 힘들어 항상 혼자였던 게 외로웠다"고 말했다.

세브란스 어린이병원학교는 서울 서부교육청과 건강장애 학생의 학교 복귀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 3월에는 교사와 학부모 대상 가이드북을 펴냈다. "너는 아프니까 이건 안 해도 된다"고 학급활동에서 무조건 제외하거나 "아프다고 자꾸 빠지면 안 된다"며 힘든 청소 일까지 다 시키는 등 '몰라서' 주는 상처는 막아 보자는 것이다. 김정선 서울 서부교육청 장학사는 "병원학교의 교육과정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교사지원단을 구성해 아픈 어린이들의 학력 수준이 떨어지지 않도록 지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박수련 기자

☞◆어린이병원학교=장기 입원이나 장기 통원 치료로 인해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없는 학생을 위해 병원 안에 설치된 파견 학급 형태의 학교. 심장질환.신장병.백혈병.소아암 등 만성질환으로 학교를 중퇴.휴학한 학생들이 병원에서도 또래 관계를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교육 과정을 운영하며 주로 전현직 교사나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교사로 활동하고 학력이 인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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