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4.裏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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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피카소가 「청색시대」에는 슬픔에 빠진 광대 같은 그림들을 주로 그리다 후기엔 형식과 형체를 모두 파괴해 버리고 자유분방한추상파 그림을 그렸듯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은 영국에서 신경을 곤두세운 추리극을 만들다 미국으로 건너간 후기에 는 자기가 만드는 영화마다 어디선가 몰래 한번씩 얼굴을 내미는 장난기를 보이는 작품들을 발표했다.
관객이 코미디 분위기에 젖어 한참 웃다보면 뜻밖의 사건이 벌어지곤 하던 이런 대표적 작품으로 우리들은 제임스 스튜어트와 이 영화의 주연을 맡은 도리스 데이가 불렀던 주제곡『케 세라 세라』(Que Sera Sera.「될대로 되라」는 표현으로도 당시에 한참 유행했던 제목이다)로 유명한 『나는 비밀을 안다』(The Man Who Knew Too Much)를 기억한다.
또 훗날 모나코의 왕비가 된 다음 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은 바로 그곳 리비에라 해변도로에서 그레이스 켈리가 케리 그란트와 차를 달리는 장면이 등장하는『나는 결백하다』(To Catch a Thief)가 있다.
1954년에 만들어진 『이창(裏窓)』은 히치콕의 후기 작품중에서도 특히 인상적이었다.이 영화는 관음증(觀淫症)취향이 농후한 작품이다.관음증이란 콜린 윌슨이 『아웃사이더』에서 「악셀의성」을 통해 잘 설명하고 있듯 성행위와 같은 남 들이 벌이는 은밀한 행동을 몰래 들여다보는 것을 의미하며,사실은 나도 소설『은마는 오지 않는다』에서 그 기법을 써먹은 바 있다.
그러나 포르노와는 거리가 먼 이 영화의 주인공은 잡지사 사진기자로 일하는 제프(제임스 스튜어트).부상으로 발목이 삔 다리하나를 깁스하고는 그리니치 빌리지의 아파트먼트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바퀴의자에 앉아 날마다 뒷집 창문들을 쌍안 경으로 몰래 염탐하는 것이 유일한 소일거리다.
브래지어를 찾지 못해 허둥거리는 가슴 큰 여자,막상 남자를 유혹해서 끌어들이고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처해 하는 노처녀,사랑하기에 바쁜 신혼부부,관능적인 무용수,하루종일 피아노와싸우는 작곡가,강아지를 키우는 노부부,여류조각가 등의 방을 날마다 몰래 구경하던 제프는 갑자기 긴장하게 된다.
날마다 싸우던 중년부부 집에서 이상한 사건이 일어난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다.병들어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면서 남편 레이먼드 버에게 잔소리만 해대던 아내가 어느날 갑자기 창문에서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제프는 남편이 아내를 살해해 어디엔가 암매장했다는 심증을 굳히지만 아무도 그의 얘기를 들어주려 하지 않는다.그래서 제프는 카메라의 망원렌즈로 날마다 염탐을 계속하며 레이먼드 버가 아내를 마당의 꽃밭에 매장했으리라는 사실을 밝혀내지만,그의 애인 그레이스 켈리와 친구 웬델 코리를 포함해주변의 아무도 그를 믿어주지 않고 오히려 범인에게 염탐 사실이들키고 만다.
보통 영화였다면 범인이 바퀴의자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제프를아무도 없을 때 찾아와 창문에서 떨어뜨려 죽이기 직전 경찰이 들이닥쳐 만사를 해결하는 방식을 택했을 것이다.그러나 방을 캄캄하게 해놓고 카메라 플래시를 계속 터뜨려 범인 이 앞을 못보는 사이 도망치려던 제프는 히치콕의 영화에선 날개가 있어도 추락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범인에게 염탐사실 들켜 영화니까 차마 그런 일은 없겠지했는데 뜻밖에 창문에서 밀려 떨어지는 제임스 스튜어트의 황당한표정,주인공이 떨어져 죽으려는 그 장면을 보고 관객들이 비명을지르기는 커녕 온통 폭소를 터뜨렸던 기억이 난다.웃다가 사건이생기고 위 기에는 웃음이 터져나오는 히치콕의 기법을 대표하는 예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한 다리가 아니라 이제는 양쪽 다리를 모두 깁스하고 앉아 있던 그의 불쌍한 모습은 거의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눈에 선하다.
참고로 이 영화의 의상을 담당한 이더트 해드는 아카데미상을 가장 많이 탄 사람들 가운데 한명으로,할리우드 의상계에선 우리나라 영화미술계의 조융삼 같은 위치를 차지했던 여자다.
〈안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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